『소묘란 유화작품의 알몸을 말한다. 아무리 빈약한 육체라도 호화찬란하게 옷을 입음으로써 숨길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작가의 참된 실력을 알려면 색채니 마티에르니 같은 것을 모조리 벗겨버린 알몸의 예술을 봐야 한다. 그것이 소묘인 것이다』(김흥수 화백)『사실 올 전시회를 위해 지난 해 말 작품을 모두 완성해 놓았어요. 그런데 벽에 붙여놓고 누드 소묘를 감상하다 보니 너무 마음에 안들더군요. 곰곰 이유를 따져보니 그림에 「기」가 빠져 있었어요』
『완성한 작품들을 치워버리고 올 초부터 다시 매달렸지요. 작품에 기를 불어 넣기 위해 하루종일 너무 집중해서 일했던 지 몸안에 있는 기가 다 빠져 지난 2월엔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요. 식사도 못 할 정도로 심하게 앓았죠. 과로사가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삶으로 늘 화제를 뿌려 온 김흥수 화백. 여든의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작품 활동을 펼쳐 온 화백의 누드 소묘전이 21일부터 6월 6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여체의 누드를 소재로 한 드로잉 30여점과 「하모니즘」 등 유화 20여점을 보여준다.
김화백은 『여성의 몸에 울긋불긋 옷을 입힌 것이 유화라면 소묘란 옷을 벗었을 때 여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보여주는 알맹이와도 같은 것』이라면서 『소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독립된 예술분야인지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일생 동안 유화를 그리기 전 늘 소묘를 통해 확인 작업을 거쳤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일 소묘는 그간 그려왔던 것과는 달리 주위 음영, 칼라, 배경 처리를 없애고 하얀 여백을 살린 채 종이에 목탄으로만 그린 여체다. 누드 소묘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선이지 명암이 아니라는 것.
선만 가지고도 입체감 나는 드로잉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델을 앞에 놓고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보면 저절로 기를 받게 되지요. 다음 이 기를 화폭에 심어넣지요. 모델을 얼마나 똑같이 그려내느냐는 경지는 이미 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델을 똑같이 화폭에 담겠다는 생각은 이미 「잡생각」이라는 그는 『그림은 느낌으로 그냥 척척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세월의 흐름마저 무색케 하는 노화백의 감각이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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