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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해] 담이 없으면 마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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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해] 담이 없으면 마음이 보인다

입력
1999.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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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담을 쌓고 지낸다」는 말이 있다. 구조물로서의 담이 아니라 이웃과 교류하지 않고 산다는 의미다. 실제로 높은 담은 어느샌가 네 것과 내 것을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개인으로서 구분하는 경계가 됐다.그러나 전통적인 우리 가옥에서 담은 외부와 내부를 차단하는 구조물로서가 아니라 중간 영역으로서 낮은 토담이나 꽃담, 생나무 울타리 등으로 공간의 매개 역할을 했다.

요즘 같은 살벌한 시대에 담없이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환경에 대해 특별한 의식과 소신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서울 지역에 한정한 조사였지만 담이 개방된 20여 집주인들과의 인터뷰 결과, 그들은 담을 다시 쌓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우려했던 것처럼 개방담장 주택이 폐쇄담장 주택에 비해 방범 문제에 특별히 불리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거주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안겨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담장의 개방이 이웃 간에 공간적 거리감을 줄여 주고 또 이렇게 좁혀진 공간감이 심리적 거리감까지 줄여 주었던 것이다.

이제는 집을 경제적인 가치나 소유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마음편히 생활을 누릴 수 있는 향유의 장소로 인식해야 한다. 집이 안락한 내부공간인 동시에 남에게는 즐거운 외부공간이 되어줄 때 비로서 이상적인 주거환경이 되는 것이다.

서울시는 4년 전부터 「푸른 서울 가꾸기」란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마련, 주택가 담을 헐고 각종 화초류를 심어 생울타리를 만들도록 권장하고 있다. 마을 단위로 희망자를 접수, 기술지도도 하고 있다. 도봉구에선 작년부터 담장을 없애고 수목 울타리를 조성하는 민간 건축주에게 수목 및 조성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담없는 집의 문제점은 서울의 가로 계획이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 앞길이 무방비로 자동차가 지나 다니는 통과로가 돼 쉽게 담을 없애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동차가 마구 통과하지 못하는 4m이하의 도로에서 적극적으로 담없는 집을 권장하고 있다.

꼭 서양식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상황에 맞는 가로계획이 필요하다. 생산적 환경창출의 주인은 주민이지만 가능성의 여지를 주는 데는 도시설계자의 영향도 큰 것이다. 주민과 도시계획가가 상호 이해를 갖는 공동창작성(mutual_creation)이 필요하다.

담을 없앤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경계에 아무런 구조물도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나 블록담 대신 여러가지 다양한 경계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뜻한다. 높은 향나무, 사철나무 등 생울타리로 사생활을 지키면서 동시에 신선한 푸르름도 맛볼 수 있다.

낮은 자연석이나 담쟁이덩굴 장미아치, 목책(木柵), 낮은 철제 펜스 등도 갖가지 화초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담 아닌 담이 될 수 있다.

/박연심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이사·건축사 사무소 장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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