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선교사로 오랫동안 일했다. 89년에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의 신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미국에 6년간 간 일이 있었다. 이때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됐다. 그때까지 나는 우리 가족이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실상은 아니었다.특히 아버지와는 깊은 대화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을 하고 주말에만 나와 만났다. 많은 남성들이 그렇듯이 나도 아버지에게 거리감과 권위, 엄격함,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때 미국에서 우연히 남성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내게도 변화가 시작됐다.
먼저 아버지와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 나 자신부터 변해야 했다. 슬프지만 아버지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예전같으면 전화로 간단히 말했던 것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주제를 미리 준비해 길게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나와 진정으로 접촉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면 외식하자는 제안도 예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또 가족이나 내 문제를 아버지와 함께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3년이 지났고 92년에는 아버지가 집에서 숲으로 가는 길을 함께 만들자는 제의를 했다. 내 휴가도 거의 끝나가게 되었던 때여서 아버지는 꼭 나와 함께 하기를 원했다. 일을 마친 후 나는 『왜 함께 하려고 하셨나요』라고 어쭸더니 아버지는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너를 생각하고 싶어서』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행동으로 나에게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 해 성탄절날 아버지와 식사를 하면서 조부모와 아버지의 종교관 등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내가 가족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또 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말씀하시면서 우셨다. 그 순간 나는 지난 3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한달 후 나는 아버지의 심장병이 심해져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나에게 커다란 슬픔이었지만 3년동안 아버지와 나누었던 깊은 대화는 큰 선물이었고 내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됐다. 죽음도 아버지와 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었다.
/하유설·메리놀선교회 신부·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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