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사회과학 / 최정운 지음 / 풀빛, 328쪽, 1만 3,000원■5·18은 끝났는가 / 안병욱 등 지음 / 푸른숲, 452쪽, 1만 8,000원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권이 세 번 바뀌었다. 시간이, 새로 들어선 정권의 너그러움이 80년 광주의 찢어진 상처를 치유했다고 여겨도 좋을까? 죽은 육신의 흔적도 이제는 사실 찾기조차 힘들지 않겠나.
하지만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고,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80년 광주는 아직도 그 시간에 머물러 있고, 그 공간에서 한 발짝 움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생생한 현실일까?
그렇지 않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19돌을 맞아 잇따라 나온 몇 권의 책들은 한국 현대사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이 참혹한 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 최정운(외교학과) 교수의 「오월의 사회과학」은 참으로 오랜만에 80년 광주를 격동과 삶과 죽음이 살아 숨쉬는 현장으로 맞게 해주는 책이다.
소설가 황석영의 다큐멘터리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손에 들고 숨 죽이며 밤을 새웠던 80년대 젊은이들이라면 이 책을 펴들고 그 때를 되새길만하다. 책에는 당시 광주 현장의 기록이 증언과 사료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하지만 최교수가 이 책을 쓴 동기는 당시의 현장을 색다른 문체와 필치로 되살려 보자는 의도는 아니다. 정치학자인 그는 『5·18은 엄청난 사회과학적 이론적 함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폭력과 언어, 사랑, 삶과 진실 등 5·18이 안고 있는 정치사회학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작업이다.
최교수는 5·18 폭력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것은 근대국가의 공적 권력이 어떤 원인에 의해 그리고 어떤 과정으로 사적 폭력이 가세하여 시민들에게 광란의 카니발을 벌이게 되었는가를 분석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문제는 60년대, 70년대 고도 성장으로 나타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인간형, 괴수(怪獸)들의 등장의 문제라고 했다. 광주 현장의 치열함을 소상하게 살려내면서도 소수의 분노가 아닌, 다수의 공적이고 냉정한 이성의 대화로 사건을 해석하려는 귀중한 노력의 산물이다.
학술단체협의회가 최근 연 국제학술심포지엄 발표 논문을 묶은 「5·18은 끝났는가」는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5·18의 의미와 한국사회의 미래를 복합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학단협 소장파 학자들과 외국학자 등 모두 15명의 글이 실려있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글을 많이 쓴 미국의 마티 하트_랜즈버그 루이스&클라크대 경제학과 교수는 5·18이 경제위기 이후의 한국현실에 소중한 교훈을 던져준다고 지적했다.
「위기가 한국을 강타하자마자 미국은 한국 정부가 모든 경제활동을 자유화하고, 탈규제화하고, 민영화하도록 요구하였다. 이 가운데 어떤 것도 한국 민중의 안녕을 위한 것은 없다.
자유시장의 미덕에 대한 진지한 믿음에서 비롯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미국 정책의 배후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동기에 대한 과거의 비판적 이해는 상실해 버린 듯하다」.
그는 자유시장 정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또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분리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파괴하며, 한국민들이 5·18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국대 강정구(사회학과) 교수는 「한반도 속의 미국, 5·18에서 금창리 핵 위기까지」라는 글에서 한반도에 개입하는 미국의 이기적인 모습을, 전남대 송정민(신문방송학과) 교수는 80년부터 97년까지 몇 개 신문의 5·18 보도행태를 분석하면서 아직까지 진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전하는 언론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밖에 최재천 변호사는 최근 펴낸 「끝나지 않은 5·18」(유스티니아누스 발행)에서 12·12, 5·18 관련 재판의 의미와 과제들을 꼼꼼히 짚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