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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5공과 동서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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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5공과 동서화해

입력
1999.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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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역사였다. 독재자 디아스를 권좌에서 몰아내자마자 「대지주」 마데로는 친위대의 손에 임살당하고 멕시코 정국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남부에서는 「혁명가」 자파타가 농민군을 결성하였고 북부에서는 「풍운아」 판초비야가 산적떼를 긁어모아 기마전을 펼쳤다.한편 부패한 「군벌」 카란자는 보수로서 기득권 계층을 껴안는 동시에 노동대중까지 구슬려 「붉은 대대(大隊)」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승자는 없었다. 평등한 농촌사회를 꿈꾸던 자파타는 귀순을 가장한 카란자 암살단의 손에 죽었고 사막과 산악지대의 거친 북부문화를 계승한 판초비야는 매복병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카란자 역시 측근인 오브레곤의 수족에 의해 잠자리에서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한편 개혁의 깃발을 치켜든 오브레곤은 재선에 나섰다. 그 후계자인 카예스의 사주를 받은 「광신자」에 의해 저격당하였고 카예스는 다음 대통령인 카르데나스를 피해 망명하고 혁신의 시대에 길을 비켜주었다.

배신의 역사

이제 세월이 지나 멕시코시티 한복판에는 살아 있을 때 그렇게 싸우기만 하였던 바로 그 군벌과 혁명가 및 풍운아가 다같이 묻혀 있는 「혁명기념관」이 서 있다. 현대사의 줄기를 크게 틀어놓은 인물이라면 그 이념 및 공과를 불문하고 모조리 「혁명신전(革命神殿)」에 모셔 놓은 것이었다.

「죽은 자」가 서로 화해하면 「산 자」 역시 공존하면서 권력의 과실을 나누어 가진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멕시코는 지적 혼돈과 윤리적 방황을 시작하고 말았다. 신전에 모두를 모셔 놓는 순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기준이 무너졌고 혁명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조차가 불분명해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래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위기만을 가져다 줄 뿐이었다.

「그 날」과 「오늘」

오늘은 19년전의 광주가 생각나는 5월18일이다. 나흘이 지나면 자비로 세상을 밝혀준 석가탄신일이 온다. 그러한 5월에 전두환 전대통령은 영남권 나들이를 마쳤다. 「국가화합기원법회」를 찾았는가 하면 『하찮은 지역감정의 족쇄를 털어버리자』고 설교까지 하였다. 그 자리에는 국민회의 간부 및 의원이 보낸 대형화환이 장사진을 쳤다고 한다. 짙은 혼돈의 어둠이 우리 사회를 가리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진정한 참회 속에서 「화해」를 고민하였더라면 「정치」를 재개하기보다 오히려 은둔과 침묵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국민회의가 순수한 자비심에서 옛 가해자를 끌어안고자 하였더라면 그냥 그를 내버려 두지 화환까지 보내고 5공의 「치적」까지 선전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양측의 본심은 순수한 동서화해에 있지 않다. 8월이면 내각제 공약을 놓고 자민련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내년 3월이면 총선에 나가 정권재창출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국민회의로서는 「동서화해」가 하나의 책략이다.

한나라당의 영남권 의석을 잠식하고 공동여당인 자민련을 견제할 지역적 맹주로서 5공인사의 세력화를 은밀히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지역감정 타파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영남권을 남과 북으로 가르고 충청권을 조이려는 지역주의이다.

거꾸로 가는 정치

그러나 정작 한심한 것은 이러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수 있게끔 하는 우리사회 일각의 일그러진 「정서」이다. 맹종을 「충」과 혼동하고 보스를 「리더」로 오해하는 유권자가 많지 않다면 광주에 총을 겨누었던 5공세력이 감히 정치적 재기를 꿈꿀 수 없다.

원칙을 저버리고 권력만을 좇는 정치인을 출신지역을 불문하고 총선에서 심판한다는 시민정신이 살아 있다면 국민회의가 「화해」라는 고귀한 말을 정략에 동원하여 그 본래의 의미를 크게 훼손시키지 못한다. 국민인 우리부터 5월의 참 의미를 되새기고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지역감정의 포로로 남는 한 우리 자신의 지적 혼돈과 윤리적 방황을 악화시키는 멕시코식의 원칙없는 정략적 「화해」정치가 더 한층 기승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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