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외치는 소리가 무속인의 주술이나 선지자의 예언처럼 들리네. 이제 1년도 남지 않은 90년대는 어찌된 일인지 2∼3년 밖에 없었던 것같아 마치 세월을 도둑맞은 기분이네.80년대는 지나간 생애의 90% 이상을 차지한 것처럼 길고도 진지한 기억으로 채워져 있는데, 목에 넥타이를 매고 난 이후는 그날이 그날처럼 중복되고 치환돼 압축파일처럼 자그마한 부분으로만 남아 있네.
그 시절 우리는 막걸리 한 잔을 들고서 역사와 인간을 논하고 하루 저녁에도 서너번씩 세상을 만들었다 부수곤 했지. 그러나 이제 쌍둥이아빠, 딸기(두딸)아빠가 되어 「여자보다 아름다운 아내」를 모시고 「깨어있는 정신」 보다는 「남아있는 용돈」이 소중한 「위대한 국민 여러분」으로 살아가고 있네.
경찰서 신세 한 번 안지고 졸업한 사람이 드물었던 그 시절 도로의 일방통행 표지판까지도 미워할 정도로 획일·통제·억압을 거부했는데, 어느덧 후배사원들에게 어설픈 조직론을 내세우고, 화살표를 보면 우선 주식시세를 떠올리게 되었네. 모름지기 남자목소리에서는 쇳소리가 나야 된다면서 악인지 노래인지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부르던 자네가, 에코와 방음효과가 뛰어난 노래방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
그래도 친구여. 나는 아직도 우리를 믿네. 그 암울하고 참담했던 시절,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수없이 고민하고 토론했던 기억들은 여전히 우리 존재를 규정하고 있다네. 우리는 제손으로 벌었다고 제입으로만 가져가는 것이 왠지 부끄럽고 외국인노동자나 재중동포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타성에 거품을 물며, 깡마르고 초점을 잃은 북한아이의 사진에 저녁식탁을 반성하게 되지.
그런데 우리가 젊은 날 품었던 생각들중 과연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부끄러울 수 밖에 없을 것같네. 우리 세대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텐데, 이를 묶어내고 견인할 체계와 동기가 없네. 혹시 「젊은 피 수혈」은 정치권에서 소수의 엘리트를 대상으로 하기 보다는, 사회 전분야에서 젊은세대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네.
87년 서울시청앞을 메웠던 100만의 젊은 피들이 공명선거와 환경오염 방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틈틈이 노력한다면 단순히 경제수치만 높은 나라가 아니라 진실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모처럼 뜬금없이 보내는 편지가 자그마한 하루의 기쁨이라도 되길 바라네. 항상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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