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재무장관 자리를 바통터치한 로버트 루빈(61)과 로렌스 서머스(45)는 명콤비였다. 훤칠한 키에 단정한 옷차림, 부드러운 화술의 루빈 장관은 26년간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증권맨」이다. 반면 다소 뚱뚱한 몸매에 퉁명한 말씨, 급한 성격에다 셔츠가 자주 바지에서 삐져나올 정도로 외모에 무신경한 서머스 부장관은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출신이다. 마치 「홀쭉이와 뚱뚱이」처럼 대조적인 경력과 성격, 외모를 가진 두 사람이지만 지난 4년여동안 척척 손발을 맞추며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해 왔다.특히 루빈 장관은 「월가의 교과서」인 시장경제의 원리를 철저히 준수하며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위 의장과 함께 성공적인 미국 경제를 만들어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법과대학원을 거쳐 월가에 뛰어들어 결국 90년 골드만 삭스의 회장에 오른 그는 92년말 당시 대통령 당선자였던 클린턴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당신이 균형예산만 이룰 수 있다면 미국 경제는 걱정할 것 없다』 이 말을 받아들인 클린턴은 그를 백악관 경제고문으로 불러 들였다가 95년 1월 재무장관에 임명했다.
루빈은 98 회계연도에 결국 40년만에 처음으로 균형예산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미국 경제는 「경기순환론」이란 경제학 원리를 무색케 하며 9년째 호황을 맞고 있다. 저실업률, 저인플레에 안정적인 성장이 지속되면서 클린턴 행정부 초기에 4,000 포인트를 밑돌던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6년만에 11,000 포인트를 넘어섰다. 온갖 스캔들끝에 상원의 탄핵재판에 선 클린턴을 살려낸 것도 바로 루빈 장관이었다. 「역대 최고의 재무장관」이라는 평에 걸맞게 그의 말 한마디에 세계의 증시와 환율이 춤을 추었다. 재임중 멕시코 페소화 위기, 아시아 경제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을 배후조종하며 위기를 수습했고 한국에 대해서는 57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규모의 구제금융에다 「제2의 방어선」을 공약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그가 사임한 이유는 가정과 사인(私人)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루빈은 그동안 수차례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클린턴대통령은 간곡히 만류해 왔다.
하버드대 사상 최연소인 28세에 정교수가 된 서머스 부장관은 93년부터 재무부에서 차관으로 2년, 부장관으로 4년을 일해온 「준비된 재무장관」으로 통한다. 루빈 장관 아래서 의회관계와 국제관계 업무를 위임받아 「장관수업」을 받아온 그는 지난 2년간 금융위기의 「특급 소방수」로 세계 각지를 누비고 다녔다. 한국에도 여러차례 방문했으며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봉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노벨상 수상후보에 거명될 만한 국제경제 전문가이며 가계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2명이나 배출됐다. /워싱턴=신재민특파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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