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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문화교실 `주부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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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문화교실 `주부들의 세상'

입력
1999.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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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삶이 뭐 별거겠어요?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송파문화원 2층 취미교실. 40, 50대 주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여성 교양강좌 중 소설가 이문구씨의 「문학」강의가 있는 날. 수강생은 30여명. 수강료는 12주(한 주에 한 번)에 3만원.

강의 분위기는 진지하다. 「늙은」학생들은 노작가의 털털한 농담에도 소녀처럼 살포시 미소지을 뿐이다.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잠시도 한 눈을 팔지 않고 깨알같이 메모한다. 창가로 비쳐드는 오월의 한가로운 햇살이 눈치없게 느껴질 정도다.

두시간에 걸친 강의가 파하고 문화원 앞 벤치에 선생님과 제자들이 둘러앉았다. 강의 뒷풀이가 펼쳐지는 시간, 다소곳했던 학생들이 「아줌마」 웃음을 터뜨리며 질문을 시작한다. 대표로 습작을 발표했던 고이석(49)씨가 작품평을 청했고 『진솔한 생활 얘기라서 감동적』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를 보고 동료 학생들은 놀려댄다. 약간의 시샘을 섞어서.

『너무 고마운 일이죠. 내가 사는 동네에서 저명한 문인의 수준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말예요. 풍요로운 삶이 뭐 별거겠어요?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난 주제를 놓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또 즐기는 거죠』 부끄럽다며 이름을 밝히길 거부하는 한 「문학 소녀」의 말.

자아실현? 실생활 활용? 자녀지도?

최근 주부문화강좌의 열기가 지자체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각 구청들이 구민회관이나 문화회관을 경쟁하듯 세우고, 각종 프로그램을 개설해 구민이자 유권자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사무소에서도 자체적으로 각종 생활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선진국형 「풀뿌리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성북문화원의 서윤정 과장은 『주부들의 문화강좌 수강은 크게 자아실현, 취업 등 실생활 활용, 자녀 지도 등 세가지 목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엄마가 배워서 아이를 가르친다」는 적극적인 목적을 갖고 독서지도나 어학강좌 등을 수강하는 주부들이 많아지고 있다. 소박한 생각에서 문화강좌를 듣다 점점 재미를 붙이고 실력을 쌓아 데뷔하는 주부들도 있다.

고려대 김문조(사회학과) 교수는 『지자체 및 지역문화단체가 주부들의 문화적 욕구에 부응함으로써 문화의 저변확대에 긍정적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단편적이고 가벼운 생활취미 위주로 편제되고 있는 점이 문제다. 오늘의 주부세대는 문화를 본격적으로 향수할 만한 문화적 감성을 개발할 기회가 적었던 세대이기 때문에 선진국형의 고급생활문화가 뿌리내리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성이 아닌 성숙한 인간으로

KBS 사회문화센터 등 여러 문화교실에서 「소설창작」을 15년째 강의중인 소설가 오인문씨. 『노래마당이나 댄스강좌에 많은 주부들이 몰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나름대로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지금은 또 「영상매체 중독시대」다. 주부들 역시 이런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성이나 깊이 있는 사고, 삶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졌다. 무엇을 배우든 가정이나 개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자아로 거듭나려는 의식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이 된다. 주부들이 문화에 대한 소양을 가질 때 제대로 된 자녀교육이 가능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밝게 할 수 있다. 주부들의 문화활동은 여성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인간으로 성숙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나는 이래서 문화강좌를 듣는다/ 2.5매

▲여재연(38·서울 종로구청 운영 세종복지문화센터 요리반) 『수강료가 싸고 집과 가까워, 아이들 학교간 후 여가활동을 위해』

▲황경옥(65·서울 성북문화원 경기민요반) 『젊어서 못 배우고 그냥 늙어버린 게 한이다. 이제라도 내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배우니 다행이다』

▲심순섭(48·같은 강좌) 『반상회 회보를 통해 알았다. 얘들 학교 가고 남편 회사일에 바쁘고 그러던 중 어느날 문득 주위에 나혼자 밖에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졌고 이를 달래기 위해 신청했다』

▲박영자(59·서울 송파구민회관 건강댄스) 『함께 여가를 보낼 친구를 사귈수 있어 좋다』

▲최은심(63·중앙박물관 운영 주부문화강좌) 『손주들과 고적지에 갔을 때 문화재에 얽힌 얘기들을 들려주기 위해 5년째 듣고 있다』

▲홍선자(53·같은 강좌) 『재미보다는 고급문화를 접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롭기 위해 3시간 반이라는 긴 강의지만 즐겁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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