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42) 시인의 「사무원」을 읽는 사무원들은 아마 한 순간이나마 몸서리를 칠 것이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시는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값싼 잠언 같은 구절도 들어있지 않다. 다만 그는 자신을 포함한 우리 주위 사람들과 사물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묘사한다.「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그는 하루종일 손익관리대장경과 자금수지심경 속의 숫자를 읊으며/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장좌불립」이라고 불렀다 한다/…/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사무원」부분).
두 다리가 의자의 네 다리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자리에 붙박혀, 적은 시주를 위해, 자금현황과 매출원가 등을 대장경처럼,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하는 사무원. 김씨가 보는 우리의 삶은 고행(苦行)이다. 그 고행을 김씨는 냉정하게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씨의 세번째 시집 「사무원」은 근래 우리 시의 보기드문 성취다.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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