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내 37·부산진구청 공무원-80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던 친구들과 얼마전 모임을 가졌다. 공무원인 나를 포함하여 교사와 회사원 각 2명 등 모두 5명이 모였다. 저녁 모임이라 식사에 반주가 따랐다. 술잔을 마주치며 『오랜만이다』 『반갑다』 등 통례적인 인사가 오갔다.
그런데 지금 직장이나 다른 모임에선 술잔을 부딪치며 뜻모를 『위하여!』를 외치는 경우가 많다. 무얼 위한다는 것인지 객체가 불분명한 그저 『위하여!』라고 외칠 뿐이다.
학창시절에 학교앞 술집에서 김치 안주에 소주를 놓고 술잔을 부딪치며 『개나발 조평통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술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개인과 나라의 발전과 조국평화통일을 위하여!」라는 딴에는 제법 의미있는 외침이었다. 비롯 술자리이긴 했지만 그 외침을 통해 개인의 발전은 곧 나라의 발전임을 생각했고, 통일의 의미를 한번씩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젊음이 곧 「광기」라는 저돌적이고 무모한 생각으로 시련과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기성인이 된 내가 신세대 젊은이들이 술잔을 마주하는 자리에서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 때만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일까. 요즘 일각에서는 무분별하게 외국문물을 수용해 그대로 치장하는 젊은이들을 겉은 하얗고 속은 노란 바나나에 비유하기도 한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던 나의 학창시절부터 십수년이 흘러 IMF라는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라 그럴까. 아니면 기성인들의 부도덕과 무분별한 상혼이 지금의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과 시각이 차라리 잘못되기를 바란다.
어느 시대건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시련에 대한 도전이 곧바로 역사의 발전이라는 논리를 나는 굳게 믿는다.
따라서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술잔을 마주할 일이 있거든 『개나발 조평통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가슴을 활짝 펼치는 호연지기를 가져보라고 요구한다면 무리한 부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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