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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지도층, '찬물'은 끼얹지말라

입력
1999.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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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과거가 좋았다」 얼마전 뉴욕타임스가 세계의 석학들에게 의뢰해 지난 1,000년간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 최고를 선정하는 작업에서「가장 살기 좋았던 시절」에 대한 대답이다. IMF체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말은 특히 실감이 난다. 좋았던 시절은 흘러가고 우리는 지금 신고(辛苦)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2월말 현재 실직한지 6개월이상인 장기실업자는 32만2,000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18%나 된다. 1년전에 비해 장기실업률과 장기실업자수가 각각 3.6배, 5.2배 늘었다. 3월중 실업률은 감소했으나 임시·일용직은 크게 늘어 정규직비중이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졌다. 또 우리나라의 실업률 8.7%는 미국이나 유럽 기준으로 볼때 13%에 해당한다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밝혔다. 맞벌이 부부가 적고, 사회보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신고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긴하지만 국민연금 소득신고서를 토대로 계산한 실업자는 351만8,000명이나 되고, 실업률은 무려 16.6%에 달한다.

그러나 마침내 긴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제 곧 불황이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최소한 지표상으로는 그렇다. 3월중 생산증가율은 95년 2월이후, 출하는 88년 8월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고, 공장가동률도 IMF사태 직전 수준에 육박했다. 서민들도 소비를 늘리고 있고, 증시는 투기를 우려할만큼 활황이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가 잇달아 발생, 국민들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 유종근 전북도지사의 서울 집에 과연 12만달러가 있었는지, 현금 3,500만원은 어디서 났는지, 서울 사택의 용도는 무엇인지등은 아직 미스터리라 하더라도, 정말 이해못할 것이 하나 있다. 유지사는 『은행을 불안하게 생각해 거액을 집에 보관했다』고 말했다. 은행을 살리자며 70조원이라는 막대한 국민세금을 쏟아붓고 있는데, 도지사이자 대통령 경제자문인 그는 은행을 못 믿겠다고 한다. 그는 IMF사태후 외자유치에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국민들은 기억하는데, 실제 행동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그가 엉겹결에 실언을 한 것인지, 은행의 신뢰도가 아니라 실명제를 불안해 했던것인지 아리송하지만, 고관집에서 나온 거액의 현금뭉치는 국민을 기분 상하게 한다.

특권층 부유층의 병역기피 또한 마찬가지다. 국민의 신성한 의무인 병역을 부정한 방법으로 기피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니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서민들은 『탈세 한번 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농담을 하는 판인데, 세금을 제대로 내고도 얼마든지 잘 살수 있는 사람들이 탈세는 왜 그렇게 엄청나게 하는지, 탈세사건이 적발될때마다 세금 꼬박꼬박내는 국민들은 화가 치솟는다. 정치판 역시 말로만 개혁을 외칠뿐 저질 코미디와 치고받는 패싸움의 연속이다. 국민들은 열심히 허리띠를 졸라매다가도 맥이 풀린다.

일본 문부성이 최근 발표한 「국민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71%가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으며, 10명중 8명은 경제적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본경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65%, 긍정적인 시각은 32%로, 53년 첫 조사후 처음으로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앞질렀다. 우리가 같은 조사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우리는 일본과는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 할수 있을까.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경제 취약성중 일부는 심리적인 것이다. 경기부양책과 구조조정이 일본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국민들은 사회지도층이나 가진 사람들에게 「고귀한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리제 오블리게(Noblesse Oblige)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이 IMF체제 초기에는 엄청난 고금리로, 최근에는 증시 활황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것을 시비하지도 않는다. 국민들은 다만 더불어 살아 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분별과 예의를 요구하고 있다. 예상을 초과하는 높은 성장률 을 달성한다해도 그 성장이「그들만의 잔치」가 된다면, 진정한 IMF체제 극복은 요원할 것이다. 그리고 상처와 갈등만 더욱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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