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9년 태아는 컴퓨터의 에너지원을 위해 인공자궁에서 사육되고, 뇌세포는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에 의해 가상현실을 살아간다. 컴퓨터 전문가이자 해커인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맨 인 블랙」에 나오는 주인공같은 비밀요원에 쫓기다, 선각자 모피스(로렌스 피시건)를 만난다.그는 말한다. 『세상 모든 것은 가상현실일 뿐이며, 선택은 두 가지』라고. 파란 알약을 먹고 자기 생활로 돌아가느냐, 빨간 알약을 먹고 진실을 규명하느냐. 이브가 건넨 사과를 앞에 둔 아담의 고민과 같다. 당연히 그는 진실을 택하고 무시무시한 현실에 직면한다. 네오는 자신을 세상의 구원자인 「그」라고 믿는 사람들과 투쟁한다.
「매트릭스」는 미국에서 3월 31일 개봉, 첫 주 3,700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거둬들인 올해 최고의 블록버스터.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는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을, 이식된 기억은 「토탈 리콜」 「다크 시티」 등 그간 나왔던 수많은 영화와 닮아 있다.
기계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아니러니한 상황과 「가식적 행복」을 거부하고 「진실의 고난」을 추구한다는 테마는 서양문명의 이성지상주의와 맥이 닿아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흥미로운 SF 액션으로 만든 데는 아시아 문화의 도움이 컸다. 피아노 줄을 매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무술부터 가마니로 쏟아붓는 듯한 과장된 총격과 헬기 탈출장면은 홍콩영화와 닮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후광도 있다. 우수에 젖은 비장한 주인공, 갖가지 버전의 동양무술을 자랑하며 적을 무찌르는 장면은 일본만화나 컴퓨터 게임 방식.
코헨 형제의 아성에 도전하는 형제 감독 래리&앤디 워쇼스키의 각본과 연출은 세기말 문화 코드인 「잡종(Hybrid)」양식을 통해 세가지 문화를 잡탕으로 끓여냈다. 재료는 홍콩영화의 액션, 일본 만화 캐릭터, 그리고 미국의 디지털 기술.
키아누 리브스는 「스피드」이후 최고의 열연으로 다시 인기 정상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그러나 「선(禪)」적 세계로 결국 승리한다는 내용은 서양의 어설픈 동양 숭배여서 우리가 보기엔 우습다. 「매트릭스(Matrix)」는 「입력 도선과 출력도선의 회로망」이라는 컴퓨터 용어.「자궁」이란 뜻도 가졌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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