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36·서울 중랑구 신내동)씨는 근무시간중 한 시간에 한번꼴은 700서비스로 전화를 걸어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시세를 확인하고 점심시간이되면 인근 증권사 객장에 들르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지난달 중순 자신과 부인 명의로 돼있는 2개의 마이너스 통장에서 대출한
도인 1,500만원을 모두 빼내 『한 달후면 2배정도는 오를 것이다』고 친구가 소개해 준 종목에 주식 투자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떼돈을 벌어 아파트를 구입했다더라. 누구는 3,000만원을 투자해 2억원을 벌었다더라』등 성공담이 퍼지면서 막연한 기대심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모아 주식투자에 나서는 막무가내식 투자 열풍이 뜨겁다.
공무원과 회사원 등 직장인들은 푼푼이 모아두었던 월급에다 은행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쏟아붓고 업무는 뒷전인채 마우스를 잡고 컴퓨터의 시세를 확인하며 탄성과 환호를 연발하고 있다. 직장 생활 5-6면동안 모아왔던 결혼자금을 모두 털어 투자하는 직장 여성들도 한둘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대출받기가 쉬운 은행이나 농협 등 금융기관 직원들도 투자대열에 끼어들었다. 서울 Y은행 한 직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목은 오늘은 얼마올랐다는 온통 주식이야기여서 최근 직원의 절반 정도가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투자하고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엔 여유자금이 있는 일부 주부들만 객장을 찾았으나 요즘엔 『주식을 모르면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주식투자가 일반 주부들에게도 확산됐다. 도심가 증권사 객장에는 3∼4살 먹은 애들을 데리고 300만∼500만원씩을 챙겨 나타나는 주부들이 와글와글하다.
투자 종목도 객장에 나오기전 주부들끼리 이야기하면서 결정해오기 때문에 곧바로 매수 주문을 낸다. 과거 증권사 직원과 상담하던 양상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전세를 월세로 바꿔 주식에 투자하는 주부들도 생겨났다.
부천에 사는 김모(35)씨는 『남편의 봉급이 절반으로 깍여 생활이 힘든차에 지금 주식을 하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고 해 전세글 월세로 바꾸고 2,000만원을 증권사에 다니는 동생에 맡겼다』고 말했다.
뚜렷한 소득원이 없는 대학생이나 취직을 못하고 놀고 있는 대졸생들에게도 주식열풍은 예외가 아니다. 각 대학마다 돈을 모아 주식에 투자하는 「투자클럽」이 유행하고 시세 등 시황에 대한 정보를 모르면 「딴나라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러다보니 하숙비나 아르바이크비를 털거나 부모를 졸라 투자금을 마련하는 대학생들도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묵묵히 땅을 파며 살아 온 농민들까지 생계의 최후 보루인 소와 논까지 팔아가며 주식투자 대열에 끼어들어 마음을 설레고 있다. 이로인해 중소도시의 몇 안되는 증권사 객장엔 시장판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고객들이 붐빈다. 전남 나주시에 있는 유일한 증권사 지점인 대신증권은 늘어나는 고객을 감당하지 못해 최근 객장 확장 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도회지에 있는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금융기관에 맡겨놓은 노후자금을 통째로 빼내 보내는 노부부들도 많다.
전남 곡성군에 사는 박모(67)씨 부부는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주식 투자를 해서 3달뒤에 이자까지 쳐서 주겠다며 돈을 보내라고 해서 마지못해 노후자금 1,500만원을 찾아 보냈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전 국민의 주식투자 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현대증권 리서치센터 박문광(朴文光·40)팀장은 『주식투자는 여유자금으로 하는게 기본원칙』이라며 『그러나 대출이나 빚 등으로 투기적 환상에 사로잡히면 많은 수익을 내려고 냉철한 판단을 못해 100% 실패한다』고 경고했다. /황양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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