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일 아침 새로운 천년의 새로운 태양은 말갛게 씻은 얼굴로 찬란히 떠오를 것이다. 지복(至福) 천년의 첫 햇살은 만민의 얼굴을 찬연히 비출 것이다.이날 전 세계에서 해가 맨 먼저 뜨는 곳은 날짜변경선에서 가장 동쪽으로 가까운 섬들이다. 남극대륙의 남태평양쪽 연안에 있는 발레니제도가 그 은혜의 땅이지만 이곳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인 무인도요, 유인도 중에서는 뉴질랜드령인 채텀제도의 피트섬이 그 영광으로 빛난다.
남태평양의 키리바시공화국은 날짜변경선의 동서 양쪽에 걸쳐있는 섬들의 시각을 통일함으로써 변경선 동쪽의 크리스마스도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뜬다고 주장하지만 그리니치 천문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이 밀레니엄의 첫 일출을 전세계에 팔며 대대적인 「최초의 빛」 축제를 준비중이다.
우리나라 땅에서는 첫 햇빛의 은총을 입는 곳이 어디일까.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이므로 거기 우리의 태양이 가장 먼저 뜬다. 천문대와 국립지리원의 협조로 조사한 2000년 첫날의 이곳 일출시각은 7시26분. 그러나 유인도로서는 울릉도이고 이 섬의 동쪽 끝에서는 5분뒤인 7시31분에 해맞이를 하게 된다.
동해안에서는 해맞이 명소로 강원도 강릉시의 정동진(正東津)이 그 지명의 이점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리상 육지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곳은 우리나라 지도에서 꼬리 부분인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석병리요, 이곳의 해뜨는 시각은 7시32분으로 정동진보다 4분이 이르다.
포항시에서는 석병리보다 조금 북쪽인 영일만(迎日灣)끝의 호미곶(장기곶)을 「동해에서 가장 먼저 해 뜨는 곳」이라면서 한민족 해맞이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여기 일출시각도 7시32분.
유의해야 할 것은 지리상 동쪽이라고 해서 반드시 해가 먼저 뜨는 것이 아니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할 때 태양의 중심이 지구상에 움직이는 궤도인 황도(黃道)는 적도에 대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겨울의 태양은 지구의 남반구쪽에서 비춘다. 같은 경도(經度)라도 북반구에서는 남쪽에서 해가 먼저 뜬다.
조사결과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해를 가장 먼저 보는 곳은 포항의 석병리도 호미곶도 아니다. 그 훨씬 남쪽이면서 서쪽으로 구부러지는 부산시 기장군의 일광해수욕장, 해운대의 해뜨는 언덕, 영도의 태종대가 모두 석병리와 같은 시각인 7시32분에 해맞이를 한다. 그런데 중도의 울산에서 동구의 방어동, 울주군 서생면의 대송리(간절갑등대) 일대가 1분 더 빨라 7시31분이 일출시각이다. 이것은 울릉도의 일출시각과 꼭 같다. 결국 동해안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은 울산이다.
울산시에 물으니 동해일출의 1번지는 포항의 호미곶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해는 바닷가에서만 뜨는 것이 아니다. 산꼭대기에서도 뜨고 더 빨리 뜬다. 설악산 대청봉에서는 7시34분에 뜨는 해가 태백산과 경북의 주왕산에서는 울산의 해안보다 1분 더 빠른 7시30분에 뜨고 경주의 토함산이나 경남 양산의 금정산에서는 훨씬 더 일러 7시27분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천년의 해맞이를 하는 곳은 토함산 석굴암 대불(大佛)의 천년의 미소다.
그러면 지나가는 밀레니엄을 마지막 보낼 1999년12월31일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해가 지는 곳은 어디일까.
섬으로는 백령도가 가장 서쪽이어서 일몰시각이 하오5시31분이다. 서해안의 육지에서는 충남 태안반도의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있는 만리포 해수욕장이 최서단이요 5시29분에 해가 진다. 교량으로 연륙된 섬도 육지라면 전남 진도의 서단인 지산면 가학리가 만리포보다 좀 더 서쪽이고 훨씬 남쪽이어서 5시35분에야 해가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 국토에서 올해의 해를 마지막 전송하는 곳은 제주도다. 맨서쪽 끝인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에서는 5시37분에, 한라산 꼭대기에서는 5시44분에 일몰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진도도 제주도도 군청이나 도청에서 일몰시각을 알고 있는데가 없고 별다른 일몰제를 준비하고 있지도 않다.
새 밀레니엄을 맞는다고 온 세계가 떠들썩인데, 저마다 천년만의 호재를 찾아내어 그것을 선전하느라 야단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첫 일출의 땅도 마지막 일몰의 땅도 자기 땅이 그런 땅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그 지역만의 무심이 아니라 나라가 무심한 것이다. 해가 어디에서 언제 지고 어디에서 언제 뜨는지도 모르는 나라, 그저 해는 서쪽으로만 지고 동쪽으로만 뜨는 줄 아는 나라, 그런 나라를 위해 밀레니엄의 새해는 뭣하러 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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