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곡은 한 색깔이다. 노란색을 머금은 초록. 물과 나무와 여행자의 마음이 모두 그 색깔에 녹아든다.충북 괴산의 화양계곡과 선유동계곡에는 지금 연초록의 변주가 절정이다. 속리산 북쪽의 같은 물줄기이면서 약 10리의 거리를 두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두 계곡은 봄을 즐기면서 그 색깔을 예찬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름이면 사람의 행렬에 모든 것이 가려진다. 요즘이 그 풍광을 가슴 속에 담아두기에 적기이다.
남성스러운 화양계곡
하류에 위치한 화양계곡은 가슴이 넓은 남정네 같다. 넓은 계곡과 우람한 바위는 자질구레한 화장을 하지 않았다. 계곡물은 완만하게 흐르고 나무들의 몸피는 굵다. 모두 아홉 곳의 명소가 있어 화양구곡으로도 불린다.
입구에서 맨 처음 반기는 것은 운영담. 계곡물은 보에 막혀 넓이가 100㎙는 족히 되는 강으로 변해있다. 물 건너편 잘 깎아놓은 듯한 기암이 쪽빛 물에 비치는 모습이 신비롭다.
화양계곡의 백미는 조선시대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말년에 책을 읽고 시를 읊었다는 암서재(岩棲齋). 집채만한 바위를 주춧돌 삼아 방 한칸짜리 집을 지었다. 원목의 색깔을 그대로 살린 암서재는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혀 튀지 않는다. 공부방 하나를 짓더라도 자연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옛사람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암서재의 앞은 금사담(金砂潭)이다. 금모래는 별로 없고 잘 닦여진 금빛 너럭바위가 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한가한 상념에 빠지기에 그만이다.
여성스러운 선유동계곡
화양계곡 상류 4㎞ 지점에서 시작되는 선유동계곡은 여성스럽다. 아기자기하면서 화려하다. 이 곳도 아홉 곳의 명소가 있어 선유동구곡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계곡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는 곳은 와룡폭포. 비스듬히 누운 바위를 타고 계곡물이 약 50㎙를 흐른다. 주변바위가 사람이 올라가기에 적당하게 배열돼 있어 폭포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조망할 수 있다.
와룡폭포의 윗쪽으로는 기암의 연속이다. 계속 돌을 타고 물을 따라가면 바위 계곡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충북의 자랑거리인 두 계곡은 관리가 「지나치게」 잘 돼있다. 계곡 끝까지 올라도 신발에 흙이 묻지 않을 정도로 길이 잘 포장돼 있고 가로등까지 설치해 놓았다. 흠이라면 흠이다.
물에 잠긴 바위에 이끼가 끼기 시작해 기름칠 한 것보다 미끄럽다. 무게 중심을 물 속 바위에 두면 넘어지거나 미끄러져지기 십상이다. 아이들이 혹 물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면 반드시 모래바닥을 골라야 한다. 괴산=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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