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부자구청의 외국어학당
1999/05/02(일) 17:51
「지방자치단체가 유학 준비생을 위한 영어학원을 만든다?」 강남구청은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시의 UCR 대학 부설 어학당을 내년 7월 개원키로 하고 다음달 어학당 설립 협의서 조인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자체가 시도하는 전국 최초의 이색사업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IMF로 외국현지 연수가 어려워지고 주민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늘어 유학준비반(랭귀지 스쿨)을 중심으로 한 「구립 어학당」을 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남구 삼성동 구청 본관 4, 5층 600여평에 자리할 이 어학당은 월 수강료 20만~30만원에 200명 안팎의 수강생을 모집할 예정이다. 구청측은 어학당 건립에 17억여원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밝혔으나 시청각 장비등 기자재 구입비를 포함하면 30여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의견은 엇갈린다. 상당수 주민은 어학당 건립에 찬성하고 있지만 일부는 시급한 복지사업을 제쳐둔채 서둘러 추진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직자, 결식아동, 불우노인등 소외된 주민에 대한 사업이 산적해 있는데 소수 고소득 계층을 위해 유학을 알선하는 일에 구청이 나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56만여 강남구민중 유학가는 사람은 연간 2,000명 정도다.
「밥그릇」이 달린 학원가는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 외국어교육협의회 강남지부 박현수(朴玄壽·45) 홍보이사는 『가뜩이나 어려운 학원사정과 주민 생활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극소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일에 큰 돈을 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설립 계획 백지화를 요구했다.
구립 어학당이 국제화 시대를 앞서 개척하는 선진행정인지, 아니면 정책 우선순위를 무시한 전시행정인지에 대한 판단은 강남 구민의 몫이지만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때이다.
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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