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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오늘] 대중속으로 파고든 철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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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오늘] 대중속으로 파고든 철학이야기

입력
1999.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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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진중한 문학전통이 있고, 헤르만 헤세의 감성적인 소설이 있지만 현대 독일 문학은 너무 재미없게 되어버렸다. 독일사람들조차 『읽을 게 없다』 는 말을 곧잘 할 정도. TV에서도 재미있게 볼만한 독일 드라마는 찾기 힘들다. 미국의 팝문화가 세계를 석권한 탓도 있지만 독일 대중가요는 한국의 트롯트만큼도 자기 나라에서 위세를 갖지 못하고있다.하지만 독일이 「문화 없는 나라」라고 「감히」 말하겠는가. 이유가 있다. 그들은 우리처럼 말로만 『평생교육』이라고 외치지 않는다. 40대 중반을 넘은 중년의 부인과 예순 먹은 노인이 모여 앉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누구나 「시민대학」에 흔쾌히 참여해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

독일 공영방송인 서부독일방송(WDR)에 「철학의 오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서부 독일 쾰른과 베스트팔렌주에 전파를 보내는 이 방송은 88년부터 96년까지 100차례 정도 철학의 여러 주제를 놓고 철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두 하버마스, 해석학의 권위자인 노(老)철학자 가다머를 비롯, 독일뿐 아니라 세계에서 명망있는 학자들이 이 토론에 참가했다.

토론의 사회를 본 사람들은 나온 학자들에게 『어려운 걸음했다』고 정중하게 말하고, 세계적인 철학자들은 『동료 학자들과 이야기하게 돼 기쁘다』며 반겼다. 독일 시민들은 가만히 TV 앞에 앉아 한 순간의 웃음으로 흩어지는 코미디나 분별없는 열정만 쏟아내는 대중음악 대신 「철학」을 듣는다.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할 때도 가끔 있지만, 시민들은 철학자들이 되도록 쉽게 풀어놓은 사회와 삶에 대한 생각들을 TV를 끈 뒤에도 곰곰히 되씹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함께 TV를 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 방송 토론의 일부를 모은 「철학의 오늘」이라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5개의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논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철학 인식 도덕 정치 삶의 5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과학과 기술문명 시대에 철학이 왜 필요한가? 정신, 자연, 시간은 무엇인가? 도덕과 가치는 무엇이고, 우리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고유한 삶은? 철학자들에게는 익숙한,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너무 공허한 이야기들이 TV를 통해 이해의 틈새를 메워간다. 「천상의 학문」이 아니라 「시장으로 내려온」 철학이야기인 것이다.

철학상담활동을 벌이는 게르트 아헨바흐는 토론에서 말했다. 「철학하지 않는 곳, 철학적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은 곳에서는 도덕적 설교가 이루어지고, 유행적 사상이 있고, 의견이 지배하고, 감동에 사로잡힌 신념이 있고, 선전활동이 있습니다. 더이상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곳에는 언론과 저널리즘만이 있습니다. 반가운 발전이 아니지요」 많은 시민들이 TV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방송이 있는 나라가 부럽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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