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현재의 선거제도를 개혁하려는 이유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금이 필요하길래 이구동성으로 이런 얘기들을 할까.국회의원 선거중 가장 가까운 사례는 96년 15대 총선. 당시 후보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았던 말이 「20당(當)10락(落)」이었다. 『20억원을 쓰면 당선이고 10억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뜻이다.
수도권 대도시에 출마해 당선된 구여당 의원의 증언을 들어보자. 『인건비 부담이 가장 커서 선거운동원 500여명을 쓰는데 5억원정도가 들었다. 또 협의회장과 동·반책 등 조직가동비가 1억원 정도, 청중동원비 시설비 식전연예인공연비 등 합동·정당연설회 비용이 수억원 필요했다. 내 활동비나 사무실 유지비, 홍보비, 막판 「실탄」자금 등을 추가하면 15억원 정도는 쓴 것 같다』
경기 농촌지역에 출마했던 한 후보측의 계산서도 비슷했다. 『공조직과 선거운동원 가동에 10억원 안팎, 친목회 동창회 향우회 농·수·축협 등 비정규조직과 외곽조직에 6억~10억원 등 20억원정도를 쓴 것 같다』는 얘기였다.
물론 돈을 적게 썼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각 정당의 텃밭지역 출신 의원들이다. 광주의 한 국민회의 의원은 『여기저기서 「왜 돈을 안 내놓느냐」「쓸 돈은 써야 당선되고 나중에 욕도 안 먹는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지만 꿋꿋하게 견뎌서 법정선거비용을 간신히 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15대 총선후 2년만에 있었던 지난해 6·4 지방선거는 경제난속에 치러졌는데도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진 못한 선거로 평가된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법정선거비로 4,000여억원, 선거사무소 설치 등 후보들의 선거시작전 준비비용으로 6,000여억원 등 1조원이 넘는 「돈잔치」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산했었다.
돈을 쓰는 사람들은 후보들이지만 정작 후보 자신들은 『유권자들이 손을 벌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선거판에서 이런 사례가 자주 발견되는 건 사실이다. 한 여당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얼마를 주면 열심히 뛰겠지만 안 주면 상대캠프에 가서 아는 것을 모두 불겠다고 협박하는 유권자들때문에 골치를 썩힌 일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올해 3·30 재·보선에 출마했던 한 후보는 『모지역 향우회라며 「유권자 100명이 모여있으니 후보가 와서 인사나 하고 가라」는 전화가 와 가 보니 노인 두 분이 앉아 소주를 걸치고 있더라』고 말했다. 지역구 선거만 네 번을 치렀다는 한 여당의원은 『악수할 때 「맨 입으로 되나요」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유권자들이 상당수다. 교장선생님같은 인텔리들도 봉투를 받곤 「뭐 나한테까지…」라면서 거절하질 않는다』고 말했다. 16대 총선이 1년앞으로 다가오자 현역 의원들은 벌써부터 지역구민들의 『한 번 들리시죠』전화에 곤욕을 치루고 있는 실정.
그러면 개선책은 없는 걸까. 국민회의 김원길(金元吉)의원은 『그동안 돈선거를 주도한 측은 역대 여당이었다』며 『이제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므로 새 집권당이 돈을 쓰지 않으면 선거문화는 의외로 쉽게 바로잡을 수도 있다』고 여당의 의식·행태변화를 주장했다. 한나라당 김중위(金重緯)의원은 『매표(買票)가 불가능하도록 선거구를 광역화하고 선거운동사무실 등 각종 자금 소요처를 봉쇄하는 쪽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손혁재(孫赫載)박사는 『법정선거비용의 범위를 선거기간전의 선거준비 자금까지 확대해, 엄격히 규제하고 선관위의 감시 기능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보들이 돈선거의 원인을 유권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법을 지키고 돈으로 표를 사지 않겠다는 후보들의 의식개혁, 돈에 주권을 팔지 않겠다는 유권자의 각오가 모두 절실하다』고 밝혔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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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선거관리자의 고백] "돈없으면 조직이 안돈다"
조직을 두지 않고 선거를 치를 수가 없고 조직이 있으면 돈을 쓰기 마련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우리 진영은 각 동협의회별로 부인, 청년등 각종 회장을 뒀다. 이는 기본이다. 협의회는 본부의 지시를 받아 인원 동원을 하고 동원된 사람들에게는 인건비로 일당을 준다. 회원은 동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넓은데는 수백명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조직도 빼놓을 수 없다. 향우회 종교단체 택시운전사모임 요식업 이·미용업 학교어머니회 각종 직능단체 등은 후보가 직접 관리했다. 이들을 접촉할 때는 아군인지 확실히 파악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교회에도 감사헌금 명목으로 헌금을 했다. 100만원을 넘는 곳도 있었고 10만원을 낼 때도 있었다. 조직을 운영할 때에는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이들도 돈을 챙겼다. 일부 사조직의 경우 수백만원 단위로 돈을 뿌렸다.
돈을 쓸 때 중간에서 새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예를 들어 동별로 협의회장에게 1000만원을 준 경우가 있었는데 500만원은 회장들이 떼먹었을 수도 있다. 내려가면서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후보 입장에서도 눈에 뻔히 보였을 텐데 그렇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유권자들이 먼저 접근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친목회와 직능단체는 『회원이 몇명인데 지난 선거때 누구를 당선시켜줬다』고 자랑하면서 선거운동기간 17일에 회원의 일당을 곱해서 구체적으로 얼마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냥 뿌리치기도 뭣해서 일당을 조금 깎아 처음에는 3~4일마다 한번씩 주다 투덜거리길래 막판에는 1~2일 간격으로 조금씩만 줬다. 이런 일이 하도 여러 군데서 생기다 보니 막판에는 우리진영 내부에서 돈문제 때문에 다툼이 일기도 했었다. 유권자가 여전히 문제였다. IMF라 그런지 수요가 더 많았다. 가정주부의 경우는 유세장에 나와서 몇시간씩 자리를 지켜주고 일당 2만~3만원씩, 반찬비를 벌어가곤 했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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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치개혁법] "94년후 정치비용 큰폭감소 없었다"
중대선거구제와 소선거구제는 과연 어느쪽이 돈이 적게 들까. 우리 헌정사가 엄격한 의미의 중대선거구제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비교해 볼만한 통계자료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와 정치문화가 엇비슷한 일본의 중선거구제(1구 2~5인) 시행당시 의원들의 정치자금 조달과 지출내역은 참고자료가 될 수있다. 일본은 94년 1월 정치개혁 때, 100여년간 유지돼 온 중선거구제(1구 2~5인)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등의 이유로 소선거구제로 바꿨다.
일본에서 중선거구제의 폐해가 한창 거론되던 89년 당시, 한 언론에서 초선의원 10명을 대상으로 조사·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정치자금은 평균 1억1,645만엔(당시 평균엔화환율 100대 500). 인건비가 3,982만엔으로 가장 많고, 교통·통신비 1,993만엔 후원회 활동비 1,890만엔 관혼상제비 1,666만엔 사무소 운영비 1,192만엔 정책활동비 920만엔 등의 순이다.
일본정치를 전공한 세종연구소 진창수(陳昌洙)박사는 『일본에서는 파벌정치가 강한 탓에, 후보에 대한 당내 계파 수장들의 지원경쟁으로 돈이 많이 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소선거구제로 바뀐 뒤에도 조직싸움이 치열해져 정치자금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진박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될 경우 지명도 높은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져 선거비용이 줄어들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논리』라고 지적했다. 당내 계파 수장들의 「자기사람 심기」경쟁이 치열해져 선거분위기가 오히려 과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 입법조사연구관인 박찬표(朴璨杓)박사는 『선거비용 등 정치자금 문제를 선거구제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과 함께, 후보및 유권자의 의식전환이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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