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르고 불성실한 가이드를 만나거나, 잘못된 관광지도 때문에 고생고생하다 시간만 보냈을 때의 심정. 더구나 그곳이 명승고적이고, 잔뜩 기대하고 벼르던 여행이었다면. 두고두고 화가 치밀고,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잔뜩 뜸들이고(2년 6개월) 태어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감독 유상욱)은 기발하다. 우선 소재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가상역사 미스터리 어드벤처」 라는 우리 영화로는 보기 드문 장르. 이상(李箱)의 시(詩)에 사실과 상상력을 절묘하게 집어넣어 완성시킨 음모 이론.
그 내용은 이렇다. 60여년 전 유명한 건축가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 일한 이상이 남긴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 거기에는 일본 점성가 하야시가 우리나라의 맥을 끊기 위해 거대한 쇠말뚝을 박아 놓은 장소와 그곳에 갈 수 있는 비밀의 열쇠가 들어있다.
그 열쇠를 갖고 관객을 재미있는 게임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람은 이상의 시에 대한 논문을 쓰려는 대학원생 용민(김태우)과 신문기자 태경(신은경), 그리고 컴퓨터 전문가 덕희(이민우).
이들이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색다르게 해석해 컴퓨터통신에 올리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글을 쓴 캠버스(고구마)와 카피켓(박정환)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덕희가 일본점성가 하야시의 생존을 확인하고, 해킹을 통해 하야시와 쇠말뚝을 제거하려고 79년 박정희 대통령이 「Z백호」를 조직했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기까지 영화는 팽팽하다. 도입부에 사건의 주요 장면들을 미리 보여줘 사건의 흥미와 궁금증을 높인 것까지는 적절했다.
문제는 덕희가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납치되고나서부터. 남은 두 사람, 용민과 태경의 안내가 어설프다.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이란 이상 시의 첫 구절에서 시작해 사건의 단서를 찾아가는 그들에게는 치밀한 추리나 기자의 끈질긴 추적정신이란 없다. 모든 것이 우연이나 짐작으로 해결된다.
감독의 말처럼 「주라기공원」의 새끼 공룡 한 마리 디자인 값(1억 5,000만원)에 불과한 컴퓨터그래픽의 엉성함(전체 제작비는 15억원), 마지막 「인디아나 존스」를 모방한 동굴 속에서의 위기, 귀신(하야시)의 초능력이 저지른 살인과 납치라는 결말보다 이들의 역할부족이 영화 전체를 허술하게 만든다. 더구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용민에 대한 태경의 어설픈 사랑의 감정까지 마구잡이로 끼어든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구성만으로는 완성되지 못한다. 그것을 실어 나르는 배우의 리드미컬한 연기, 계산된 연출이 없으면 소용없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매야 보배 아닌가?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강한섭(영화평론가):조악한 특수촬영은 이해한다. 그러나 허술한 이야기, 몰입할 수 없는 연기는 거부한다.(★★)
◆김시무(영화평론가):초현실적인 결말만 아니었다면 이상에 대한 탁월한 영화적 보고서가 됐을 것.(★★★)
★5개 만점, ☆는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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