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에서 지면 다음날부터 식물정권이야. 개혁이고 뭐고 없어』『우선 시간을 벌어야지. 우리 당을 쪼갠다는 데 맞장구칠 일 있나』
『전국정당도 좋지만, 충청도를 내주면 당은 끝장이야』
정치개혁과 관련, 당의 핵심당직자들이 사석에서 하는 말들이다. 「저비용 고효율의 정치」 「지역구도 타파」등을 기치로 내걸고 시작된 정치개혁논의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략놀음으로 변질되고 있다. 선거구제가 현안으로 부각된 뒤에는 정치권의 온 신경이 자기생존 문제로 쏠리는 탓이다. 각 정당마다 어떤 선거제도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를 따지며 의석수 「시뮬레이션」에 여념이 없고 의원들은 모이면 공천 걱정이다.
3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 시민연합」은 이달 초 3당 지도부에 공한을 보내 정치권의 개혁입법 논의에 시민단체측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주도록 요구했지만, 아무런 회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정치권에서는 선거구제 논의가 계속되면 될수록 정략으로 변질된 기형적 선거구제가 협상테이블에 오르내릴 뿐이다. 영·호남·충청의 지역텃밭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도권에서는 「동반당선」을 노리는 복합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결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선거구제 변경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화여대 조기숙(趙己淑)교수는 『여야간, 의원상호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다른 정치개혁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을 보이므로 차라리 현행선거구제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현행 전국구제의 위헌소지 등을 개선키 위해 제안한 것으로 1인 2표의 정당투표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림대 김용호(金容浩)교수는 『현행 공천제도에서 중·대선거구와 비례대표제를 병행하는 것은 정치 「개악」이 될 것』이라면서 『선거보다 공천이 당선의 관문이 될 것이므로 보스정치의 강화, 급격한 사당(私黨)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권력구조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구제를 논의하는 데 대해서도 학계는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양대 양건(梁建)교수는 『선거구제는 대통령제, 또는 내각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기능을 한다』면서 『권력구조보다 먼저 선거구제를 결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정치개혁이 표류하고 있는 데 대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각단체가 참여하는 정치개혁협의기구 설치를 거세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정치개혁 시민연합」은 선거구 획정을 정당이 결정하는 우리 제도는 사실상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라며 중앙선관위 산하에 의회로부터 독립한 선거구 획정위원회 설치를 요청하고 있다. 15대총선 당시에는 여야 총무협상으로 선거구를 획정한 뒤 충북 영동, 인천 계양구 등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던 일도 있다. 국회가 선거구를 획정하는 나라는 우리와 미국뿐으로 영국 일본 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가 의회로 부터 독립된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갖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정당이나 의원이 기구의 결정을 수정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의 자세는 역대 어느 때보다 폐쇄적이다. 국민회의측 정치개혁추진위원장인 안동선(安東善)의원은 『시민단체의 의견은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수렴했다고 본다』면서 『선거구 획정도 행자부 등의 통계가 마련되는 대로 여야간에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정치개혁 제대로 하자] 일본의 타산지석
현재 정치권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선 일본의 경우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 우리 정치권에선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일본에선 94년1월 거의 100여년 가까이 유지돼 오던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는 일대 변혁이 있었다. 현재 일본은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병립시키고 있다.
선거구제 변경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대규모 정경유착 사건으로 정치권 외부로부터의 정치개혁 압력을 폭발시킨 「리크르트 스캔들」이었다. 구체적 상황은 다르지만 「IMF사태」로 인해 비자발적 형태로 정치개혁 부담을 지게 된 우리 정치권사정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에서 94년 선거법 개정후 96년 총선을 한차례 치렀을 뿐인데 다시 중선거구제로의 환원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소선거구제로 바꿀 당시의 정치적 명분은 「돈 선거」 및 파벌 정치의 폐해를 줄이고 세대교체를 촉진하는 한편 복수공천으로 인한 같은 당 후보끼리의 과열경쟁을 완화하자는 것등이었다. 중선거구제 환원론자들은 이같은 고질적 병폐들이 소선거구제에서도 고스란히 되살아 났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선거구제 특유의 과열현상이 더욱 극심해 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숙명여대 이남영(李南永·정치학)교수는 『일본의 경우는 제도를 바꾼다고 당연히 정치개혁이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 것』이라며 『어떤 제도를 택하든 정치권이 과거의 의식과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정치개혁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제도를 탓하기에 앞서 정치권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정치개혁 제대로하자]중대선거구 '여촌야도'타개위해 고안
우리 헌정사에서 선거구제도가 정치개혁차원에서 다뤄진 적은 드물었다. 제헌에서 15대국회에 이르는 동안 선거구문제는 정치세력의 주도권확보를 위한 수단이 되면서 조령모개의 변화를 겪었다. 때문에 중선거구는 한 때 권위주의 정권의 권력연장 방편으로 취급됐다가, 다시 저비용·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민주화 열기속에 부활됐던 소선거구제도 이제 과열·혼탁선거의 주범처럼 여겨지고 있다.
22년간 실시되던 소선거구제는 73년 2월27일 9대 국회선거 때 2인 중선거구제로 바뀌어 12대국회까지 15년간 지속됐다. 이 중선거구제는 유신정권이 「여촌야도(與村野都)」현상 타개를 위해 고안해 낸 것이었다.
민주공화당은 67년 7대총선에서 서울 14개 의석중 1석, 부산 7석중 2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고, 다시 71년 8대 총선에서는 서울 19개중 1석, 부산 8개중 2석을 얻는 등 도시지역에서 참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2인선거구를 도입한 9대총선에서 여당은 서울 16개중 7개, 부산 8개중 4개를 획득하는 효과를 봤다.
연세대 신명순(申命淳)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여당은 선거구제를 바꿔 6대 도시합계 의석중 18%(소선거구)에서 47%(중선거구)로 약진했다.
소선거구제가 부활된 것은 88년 13대총선부터. 야 3당은 이를 통해 지역텃밭을 확보했고, 6공정권 역시 내부에서 5공세력을 부분 물갈이할 수 있었다. 15대 총선을 전후해 신한국당이 과반수의석 확보 및 선거후유증해소를 위해 중·대선거구제도입을 다시 시도했다. 96년8월 국민회의는 성명을 통해 『중·대선거구는 도리어 돈이 많이 드는 제도』라며 『금권선거, 검·경중립 대책없이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이를 강력히 반대했었다. /유승우기자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낮잠자는 개혁법안] '국회실명제' 결론못내
선거구제 논의 와중에서 정작 시급하고도 중요한 정치개혁의 다른 부문은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무엇보다 국회제도 및 운영의 개혁작업은 국회 정치개혁특위(위원장 임채정·林采正)차원에서 이미 상당히 협상을 진척시켜 놓고도 시원스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좀더 성의를 보여 지금까지 합의한 사항을 입법조치로 매듭만 짓는다면 국회는 바로 다음 회기 때부터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상임위에서의 일괄질의·답변 방식이 일문일답식으로 바뀌게 됨은 물론 법안의 발의자를 명기, 각 의원들의 의정활동 실적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실명제」도 가능해 진다.
국회의 상시 개원체제가 확립되고 상임위 산하의 소위원회 제도도 활성화할 수 있다. 예산결산위원회를 상설화하는 한편 의안 표결 때 각 의원들의 찬반을 구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기본적으로 「일하는 국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회의장이 당적을 버리도록 하고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개혁과제다.
정당 및 선거, 정치자금에 대한 개혁작업도 선거구제 논란에 가려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치권이 명분으로 내걸고 있는 「돈 안드는 정치」를 위해선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러한 개혁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선거구제 개혁도 다만 형식에 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 선거시대에 즈음해 선거운동 방식을 정치개혁 목적에 걸맞게 좀더 세련되게 개선하는 작업도 시급하다. 선거가 없는 때에도 막대한 돈을 꾸역꾸역 먹어 치우는 중앙당 및 지구당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현재로선 전혀 검토가 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문제도 시간을 오래 끈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선거구제 논란과는 관계없이 당장에라도 가능해 질 수 있는 문제다. 후원회 제도의 그늘진 관행을 바로 잡고 정치자금의 「소액 다수화」를 실현 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마련은 이르면 이를수록 바람직하다.
법적인 조치를 통하지 않고 정치권의 뼈를 깎는 자성만으로도 가능해 질 수 있는 정치개혁도 있다. 공천제도를 포함한 정당 의사결정 구조의 비민주성을 다소라도 완화시켜 나가는 것은 제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의식의 문제다. 정치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은 선거구제 논란의 뒤에 숨어서 은연중 정치개혁을 지연시키고 있는 정치권의 의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