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 하나. 「비밥(bebop)은 백인들의 세계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깝게 가고싶다는 욕망과, 『나 깜둥이야. 그래서?』라는 사디즘적 절망 사이의 충돌 사이에서 태어난 음악이다. 맨 앞에 「거칠게 요약하자면」이라는 유보 조항을 달아는 두었으나, 책에서 느껴지는 그의 재즈 무공으로 미뤄보건대 겸양이다.시인 유하(37)의 「재즈를 재미 있게 듣는 법」은 맛있다(황금가지 발행). 재즈 입문서이면서, 마니아들이 읽어도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글은 음악을, 그중에서도 재즈라는 엇박의 음현상을 어떻게 포착해낼 수 있을까?
찰리 파커에서 미셸 르그랑까지 모두 60명 스타일리스트의 대표 앨범이 그의 글을 만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포트레이트 인 재즈」식의 재즈 예찬과 다르다. 서사(정보)와 서정(감상)이 우리말 맛에 녹아 행복하게 결합했다는 점에서 재즈 글쓰기의 새 지평이다.
장고 라인하르트가 손가락 화상을 딛고 펼친 신기의 연주를 가리켜 「무검이 유검을, 무초가 유초(有招)를 이긴다」고, 마약에 찌든 쳇 베이커의 삶을 「몽롱한, 참혹한 휴식의 연속」이라고, 소니 크리스의 색소폰에 이르러서는 「고추처럼 맵고, 레몬즙처럼 시고, 겨자처럼 톡 쏜다」고 썼다. 그의 말은 재즈라는, 어찌보면 덧없을 수도 있는 음현상에 적확히 꽂히는 핀이다. 20쇄를 돌파한 화제의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보여준 날렵한 언어연금술이 재즈를 만난 결과일까?
재즈판을 본격적으로 모을 때인 4년 전부터, 그는 이런 책을 쓰고 싶어 했다. 85년 습작 시절, 그의 표현을 빌면 「백수시절」 만난 재즈에의 빚을 갚자는 심정이었다. 어떤 음반을 들으면 좋을까, 재즈 애호가로 소문나면서 곧잘 접해 온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재즈는 내 허하고 피폐한 마음에 찾아 온 벗이었어요.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색소폰 주자가 되고 싶어요. 술 취해선 시를 못 쓰지만, 재즈는 취해도 할 수 있을 테고…』 지난 3월 발표한 5번째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에는 찰리 파커와 빌리 할러데이에게 부치는 헌시가 수록돼 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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