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뜬다. 만화세상이 열린다. 한 무협만화 발행부수가 「꿈의 200만부」돌파를 눈앞에 뒀고, 지방자치단체가 대주주로 참여한 만화산업주식회사가 탄생했다. 정부 수립 이래 처음으로 정부가 좋은 만화 3편을 선정, 일정량을 구매해 공공도서관에 비치하기로 했다. 음습한 만화방에서만 기생하던,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낙인찍혔던 만화. 이제는 문화의 한 영역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열혈강호」, 200만부 돌파 초읽기
자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이 튼실한 법. 최근의 만화 붐도 정책적으로 개설된 시장이 아닌, 몇몇 메가톤급 단행본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만화시장이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격주간 만화잡지 「영챔프」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있는 무협만화 「열혈강호」(글 전극진, 그림 양재현). 94년 5월부터 「영챔프」에 연재된 이 만화는 최근 18권째 단행본이 발간됐다. 지금까지 발행부수는 무려 180만부. 단행본 한 권당 10만권씩 팔려나간 셈이다.
출판가에서는 20권째가 나오는 10월께 국산만화 사상 처음으로 200만부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 200만부가 팔린 만화는 일본만화 「드래곤 볼」과 「슬램덩크」뿐. 「열혈강호」는 무림정파(正派)를 대표하는 천하오절과 무림사파(邪派)를 대표하는 천마신군간의 복잡다난한 대결구도, 여기에 한비광이라는 코믹캐릭터의 종횡무진이 신세대 독자층을 줄기차게 끌어들이고 있다. 연말에는 게임(KRG소프트)과 애니메이션(대원동화)으로도 즐길 수 있다.
「열혈강호」말고도 100만부 이상 팔린 「밀리언 셀러」도 줄을 잇고 있다.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지상원 소주완의 「협객 붉은매」, 임재원의 「짱」, 박산하의 「진짜 사나이」, 이충호의 「까꿍」…. 만화는 빌려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수작들이다. 만화계는 이같은 만화시장의 활성화를 어렸을 때부터 TV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하면서 자란 20대 후반~30대 초반 작가와 독자들이 90년대 중반부터 만화시장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만화산업주식회사를 아십니까?
최근 국내 처음으로 만화산업주식회사가 탄생했다. 부천시가 대주주로 참여한 ㈜PCN(대표이사 남승우·풀무원 사장)이 21일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적인 만화산업을 선언한 것. 10억 5,000만원의 자본금 중 부천시가 4억 9,000만원을 출자, 지자체가 만화산업에 뛰어든 첫 사례가 됐다.
㈜PCN은 한마디로 만화전문기획사. 「신씨네」 「씨네 2000」 「영화발전소」 등 영화전문기획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될 성 부른」만화와 작가를 기획단계서부터 선정, 발굴하고 캐릭터, 게임,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등 만화 연관산업을 통해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 연관산업에 알맞는 캐릭터와 스토리 창출에 주안점을 둔다. 작가에게 원고료 전액을 먼저 지급하고, 단행본과 연관산업 수익은 계약에 따라 작가와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5, 6명의 작가를 내정했으며 작품소재와 매체를 선정, 6월 첫 작품을 발표할 예정.
사업팀장 권용훈씨는 『20억달러의 수입을 올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도 극장수입은 1억달러에 불과했다』며 『위험부담이 적은 출판만화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 2002년 1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정부의 관심
5월 4일 경기 부천 원미구 도당동 132번지에 대지 2,213평, 건평 893평짜리 「부천만화정보센터」(소장 조관제)가 문을 연다. 국내 최초의 만화박물관이자 만화도서관, 체계적인 만화교육관이다. 「코주부」 「고바우영감」 「라이파이」 「고인돌」 「꺼벙이」 「주먹대장」 「둘리」 등 국내 유명만화의 원화와 캐릭터 전시, 국내외 희귀 자료와 최신정보 제공,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출판만화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이 주요 아이템. 5월 5~9일에는 만화가 대담, 야외만화교실, 만화벼룩시장 등으로 꾸며지는 개관기념축제도 열린다.
중앙정부도 나섰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황미나의 「레드문」, 박흥용의 「내 파란 세이버」, 문흥미의 「THIS」를 「오늘의 우리만화」로 선정, 발표했다. 매년 분기별로 오락성 작품성 교훈성이 뛰어난 작품을 골라 1종당 460만원어치를 구입해 공공도서관과 해외문화원, 대학 만화관련학과에 배포할 예정.
하지만 지자체 및 정부의 지원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학산문화사의 박성식 편집팀장은 『최근 만화가 각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나 음반 등 메이저 장르에 비하면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며 『만화에 대한 지자체와 정부의 열정이 오히려 독자들의 눈높이만 턱없이 높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열혈강호」의 양재현씨도 『작업중인 만화가를 잡아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며 『1장당 1,000~4,000원씩 하는 스크린톤(만화 배경이나 그림자 묘사에 사용하는 투명용지)을 염가판매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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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부천
부천에 가면 문화가 보인다. 문화가 있다. 성공한 영화제로 손꼽히는 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 대학생들의 만화축제로 정착한 국제대학애니메이션축제(PISAF), 국내최초의 만화산업주식회사 PCN과 대규모 만화정보센터. 모두 부천에서 이뤄지는 것들이다. 기악 전공자들에게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보다 인기가 높은 부천시립교향악단도 빼놓을 수 없다.
7월 16~24일 열리는 제3회 PIFAN과 올해로 창단 11주년을 맞는 부천시향은 예전부터 있었다고 치자. 관심은 부천시가 최근 기울이는 만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 학생운동권 출신의 원혜영 시장이 지난 해 6월 당선된 직후부터 만화산업은 부천의 전략산업으로 채택됐다. 10~15일 열린 PISAF를 비롯, 21일 창립총회를 가진 ㈜PCN, 5월 4일 개관하는 만화정보센터 등이 그 결과물. 6월에는 인터넷에 전세계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유료 만화정보사이트도 개설할 예정.
원혜영 시장은 『인구는 많고 땅은 좁은 부천이 제조업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 전문성과 창의력이 필요한 만화산업을 전략산업으로 골랐다』며 『만화는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 않아 그만큼 위험부담이 적은 것도 큰 이유가 됐다』고 밝혔다. 정치입문 전인 81년부터 6년동안 풀무원식품을 창립, 운영한 원 시장의 「사업감각」도 한 몫 했다.
부천시의 만화산업정책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전문가의 과감한 기용과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탈권위주의적 태도. ㈜PCN의 사업팀장인 권용훈씨는 지난 해까지 한국만화가협회 사무국장을 지낸 스토리작가, 만화정보센터 조관제 소장도 만화가 출신. 여기에 「아니메가 보고 싶다」의 저자 겸 만화평론가 박인하씨가 문화산업 자문위원, 최근 「유럽만화를 보러갔다」라는 만화이론서를 출간한 이동훈씨가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동훈씨는 『문화적 마인드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덕분인지 우려했던 「공무원 냄새」는 별로 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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