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날 미치게 해!'우테 요르크 지음, 모은경 옮김
산성미디어, 288쪽, 7,500원
「내 남편에겐 모든 것이 프로그램에 따라 정확히 진행된다. 우리 부부는 토요일 밤 11시 뉴스가 끝난 후에 섹스를 한다. 토요일 저녁 모임이 밤늦게까지 있으면 토요일 대신 일요일 밤 10시로 바뀐다. 전에는 그런 남편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이 잠옷을 입고 침대로 기어 올라올 때면 벌써부터 목덜미가 뻣뻣해지고 머리털이 곤두선다」.
어떤 사람은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 하고 누구는 연애의 끝이라 한다. 결혼하고 나면 좋은 일보다는 자꾸 다툴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남이 들으면 웃어넘길 사소한 생활습관이나 기호의 차이도 쌓이다 보면 분노와 미움으로 변하고 결국 「이게 다였나」, 「선택을 잘못했다」는 후회로 이어질 수 있다.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구했다간 『그까짓 일도 못참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넌 날 미치게 해!」는 부부싸움의 구체적인 예들을 모아 소개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책. 50가지 정도의 사례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남의 불행을 읽으면서, 또 공감하면서 유쾌하게 책 장을 넘길 수 있다.
갈등 사례는 아내와 남편의 경우를 각각 들고 있다. 너무도 낯익은 고민을 늘어놓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독일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부부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하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내들이 백 번을 더 얘기해도 남편은 변기 의자를 항상 올려놓고 나온다. 집에선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하면서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을 웃기려 들고, 집에 오면 TV 리모콘을 독점해 이리저리 돌려대다가 TV 앞에서 곯아 떨어지는 남편. 자기가 운전할 때는 난폭하기 이를 데 없다가 자동차 핸들을 넘겨받으면 『왼쪽! 오른쪽!』하며 끝도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 고부(姑婦) 갈등을 중재하기는커녕 더 꼬이게 만드는 남편들에 많은 여자들이 넌더리를 낸다. 남편이라고 할 말이 없겠는가. 아내의 끝도 없는 수다, 집에서 마음대로 담배도 피지 못하게 하고 들어오기가 무섭게 닦으라고 아우성치는 결벽증. 성관계에서는 늘 소극적이고 처가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도 큰 불만이다.
이 책에는 사례마다 해결법이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무시해도 상관 없다. 부부생활의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절반은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온 존재라는 화두정도만 알아챈다면 충분할테니까.
김범수기자 bskim@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