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9월1일 미국에서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KAL) 점보기가 소련영공을 침범, 소련 미사일에 격추돼 269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 후 특별기를 타고 사고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북단 왓카나이(稚內)시에 들어간 당시 대한항공 조중건부사장은 일본인 희생자 유족들이 진을 치고 있는 호텔을 찾았다. 호텔의 다다미방 한칸을 차지한 유족들은 KAL측의 늑장 대응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는데, 성난 소리들이 밖에까지 들렸다.■이같은 분위기 때문에 모두 조부사장이 한바탕 곤욕을 치를 것으로 예상했다. 조부사장은 유족들이 자리한 방에 들어가자 마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한 후 『엄청난 사고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백배 사죄했다. 조부사장의 갑작스런 큰절에 어안이 벙벙해진 유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조부사장의 겸허하고 진지한 태도가 유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1985년 8월12일 도쿄발 오사카행 일본항공(JAL) 점보기가 추락, 520명이 사망했다. 당시 JAL사장은 다카기(高木養根)였는데, 사고처리 후 퇴직한 그는 사망자 유족들을 일일이 방문해 사죄했다. 유족방문은 지난 1월9일 그가 86세로 사망할 때까지 계속됐다. 분노에 찬 일부 유족들은 방문을 거절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그의 열성에 감복해 사죄를 받아들였다. 이같은 다카기사장의 사죄행각에 보답하듯 JAL은 그 후 한건의 인명사고도 내지 않았다.
■연이은 사고로 얼룩진 KAL이 경영진을 바꾸고 경영혁신을 다짐했다. 사고 때마다 사죄하고 인명우선 방침을 내걸었으나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느낄 수 없었다. KAL경영진이 조중건부사장이나 다카기사장처럼 진지하게 사죄하고, 이를 인명중시 경영으로 연결했더라면 오늘의 위기상황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새 경영진은 이같은 교훈을 살려 말뿐이 아닌 인명우선 경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방향으로 KAL의 항로를 잡아야 한다. /이병일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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