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할머니의 호주라니 말이되나”“전통가족제도 파괴하고 노인·청소년문제 유발”
호적상 한 가족의 「법적 주인」을 지정하는 「호주(戶主)제도」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계가 호주제를 봉건적인 부계혈통주의와 비뚤어진 남아선호사상을 존속시키는 상징적 제도로 규정, 폐지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나서자 유림측에선 『전통 가족제도를 파괴시키려는 행위』라며 펄쩍 뛰고 있다. 90년 여성의 호주승계권을 인정한 민법개정 이후 잠잠했던 호주제논쟁이 다시 점화된 것.
■여성계 최대이슈로 등장한 호주제폐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모임 등 여성단체들은 26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에서 「현행 호주제도의 문제점과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갖고 호주제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운동과 대국민 서명운동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강기원(姜基遠)위원장이 「호주제 폐지」를 취임 일성으로 밝힌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도 호주제 폐지에 대비한 후속대책을 민간기관에 용역을 의뢰키로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성계가 호주제에서 특히 문제를 삼는 것은 남자 우선의 호주승계순위. 민법 984조에 따르면 호주를 승계할 수 있는 가족은 직계비속남자(아들 또는 손자), 직계비속여자(결혼하지 않은 딸 또는 손녀), 처, 직계존속여자(어머니 또는 할머니) 등의 순이다.
한마디로 여자는 남자가 없는 경우에 한해, 아내는 자식이 없을 때만 부차적으로 호주를 승계할 수 있는 셈이다.
90년 법개정 때 호주의 권리와 의무규정이 대부분 삭제돼 호주의 지위가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니게 됐지만, 이같은 승계조항에 따라 남편이 사망했을 경우 아내는 아들과 딸 다음으로 그 집안의 「주인」이 된다.
또 손자만 있는 노부부중에서 남자가 먼저 사망하면 손자는 갓난아이든 초등학생이든 상관없이 할머니의 호주가 된다.
여성계는 이같은 불평등 요소를 없애기 위해 현행 호주제도를 완전 폐지한 뒤 ▲주민등록과 호적을 통합하거나 ▲서구식으로 1인 1호적제도를 도입할 것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운영위원 고은광순(44)씨는 『한 가정의 주인을 알리는 호주의 승계순서가 남자위주로 돼 있다 보니 반드시 아들을 낳아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비뚤어진 의식을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호주제 폐지는 가족의 붕괴
이에 대해 혈연주의를 근거로 한 우리 전통가족제도의 붕괴를 우려하는 반론도 드세다.
한국정주학회장인 동덕여대 조준하(58)교수는 『가장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단합하고 가족간 갈등을 조정하는 호주제야말로 21세기형 가족제도의 모델』이라며 『호주제의 폐지는 전통적인 가족의 유대를 깨뜨릴 뿐 아니라 미국처럼 심각한 청소년·노인문제를 유발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균관이나 한국씨족공동체연합등 유림단체들도 여성계의 움직임에 대해 집단대응할 태세여서 호주제를 둘러싼 공방은 당분간 가열될 전망이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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