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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좋지 않은 조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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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좋지 않은 조짐들

입력
1999.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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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한 절도범의 「도둑일지」가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지난 며칠동안 뭔지 불길한 느낌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사건으로 민심이 한번 등을 돌리면 그 정권은 다시 민심을 잡기 어렵고, 국민의 냉소속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는 것을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기때문이다.우려했던 대도(大盜)파문이 일단 주춤해진 것은 나라를 위해서 다행이다. 고관대작들의 집에서 막대한 현금과 금은보화와 달러를 훔쳤다고 큰 소리치던 피의자의 자백중 상당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가 운보와 남농의 그림을 훔쳤다던 김성훈농림부장관집은 다른 사람의 집을 착각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유종근전북지사는 자기집에서 12만달러를 훔쳤다는 피의자의 주장을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범인은 다른 장관 3명의 집에서도 금괴 등을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아직 이름을 내놓지는 않고 있는데, 그 주장도 믿기 어렵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대도소동이 이 정도로 수습돼 간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 이번에 정부여당은 민심속에 숨어 있는 시퍼런 칼날을 보았을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집에서 엄청난 돈과 패물을 훔쳤다는 도둑의 말 한마디로 곧장 끓어 오르는 국민의 분노에 두려움도 느꼈을 것이다. 많이 훔쳐냈다는 도둑의 말을 무조건 믿으면서 도둑의 주장을 부인하는 공직자들에게 거짓말 말라고 돌팔매를 던지는 위험한 국민감정도 읽었을 것이다. 정부여당, 권력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이처럼 작은 불씨 하나로도 폭발할 수 있는 무서운 여론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저 부자들을 노리는 게 아니라 고위공직자들을 노리는 도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예삿일이 아니다. 도둑들까지 정치성을 띠고 자신의 범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정권교체로 권력을 잡은 새 권력자들이 과거와는 다른 깨끗한 공직자상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면 그런 「의도(義盜)지망생」이 날 뛸리 없다. 이번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직전까지 치솟은 배경에는 정권교체를 한 이 마당에도 고관들의 집에 현금다발이 쌓여있었다는 배신감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 정권에게 또 하나의 좋지않은 조짐은 사건축소 의혹이다. 역대정권 아래 이런 성격의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거나 기소한 적이 없는 경찰과 검찰은 이번에도 똑같은 관행으로 사건을 덮으려 했다. 물론 장관과 도지사의 집이 도둑을 맞고, 절도범이 12만달러의 외화까지 훔쳤다고 자백하는 사건을 경찰 검찰의 판단만으로 덮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 사건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으며, 어느 선에서 극비조사와 사건축소를 지시했는지가 관심사항이지만, 그점 또한 짐작이 가능하다. 절도미수로 구속된 김씨가 고관들의 집을 털었다고 자백한 것은 재보선을 앞둔 3월18일이었는데, 상당한 고위층에서 이 사건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저울질하지 않았을리 없다.

조세형이 대도가 되고, 다시 의도가 된 것은 사건축소 의혹에 대한 국민의 공분때문이었다. 이번에 절도범 김강용씨를 절도미수로만 기소했던 검찰은 증거를 보완해 나머지 고관집 관련사건들을 기소할 작정이었다고 낯뜨거운 변명을 하고 있는데, 대도는 바로 그런 검찰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번에 한나라당은 잘못했고, 공당으로서 위신을 잃을 위기에 빠졌다. 아무래도 절도범 김씨는 거짓말을 많이 한것 같고, 한나라당은 도둑의 거짓말에 놀아난 꼴이 됐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한나라당을 공격하는데 그치지 말고, 이번 사건의 앞뒤에 도사리고 있는 좋지않은 조짐들을 직시해야 한다. 고관집 전문도둑이 등장하고, 고관집에 현금다발이 쌓여 있고, 국민은 도둑의 말을 더 믿으려하고, 경찰과 검찰은 알아서 기고, 이성을 잃은 야당이 도둑의 대변인처럼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 이 모든 현상들은 분명히 좋지않은 조짐들이다. 정말로 불길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본사주필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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