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애호가라면 공연장 맨 앞자리에 앉아 연주자를 열심히 스케치하는 한 노신사를 자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67년 한국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 「풍운아 홍길동」을 제작한 원로만화가 신동헌(72) 화백이다. 스케치북을 끼고 음악회장을 드나든지 50년째다. 그동안 몇 명이나 그렸는지 셀 수도 없다. 그중 105점을 골라 24일~5월 1일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음악가 스케치전」을 연다. 지난 해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작게 연 적이 있지만 본격 전시회는 처음. 첫날 오후 5시 오프닝은 음악 영재들의 작은 음악회를 겸한다.음악가 스케치전은 외국서도 보기 드문 이색 문화풍경. 신화백은 『6·25 전쟁 중에도 음악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할만큼 못말리는 음악애호가다. 『사실 그림보다 음악을 더 좋아한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노안에 번지는 환한 웃음이 어린아이처럼 천진하다. 『처음 스케치북을 갖고 들어갔을 때는 떨렸지요. 지금은 능구렁이가 다 됐지만』 슥삭거리는 연필 소리 때문에 가끔 눈치가 보여 옆자리 손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스케치 덕분에 국내외 음악가들과 친분이 두텁다. 그의 스케치를 갖고있는 음악가만도 300여명. 집으로 초청해 가정음악회를 하거나 술을 한 잔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음악인들 속내까지 훤하다. 외국의 모 유명 현악4중주단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가 12년간 서로 말도 않고 지낼 만큼 원수같은 사이라는 둥 남들이 모르는 비밀도 많이 안다. 『위대한 연주자도 알고보면 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재미있다.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스케치전 팜플렛에 신화백을 「국보급 고전음악 애호가」라고 지칭하며 이렇게 썼다. 『그의 사전에 「권위」란 없다는 것일까? 항상 웃음 때문에 풀려있는 어깨에서, 연주회 맨 앞좌석에 앉아 빠른 손놀림으로 스케치하는 유연성에서, 모든 사물을 모차르트처럼 천진하게 바라보는 눈에서, 희극적 패러디의 순발력에서, 늘 그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신화백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모차르트와 현악4중주. 갖고있는 6,000장의 클래식음반 중 500장이 모차르트다. 4권의 음악책도 낼만큼 전문가 수준이 다 됐다. 그중 「클래식 길라잡이」는 클래식서적으로는 드물게 11판을 찍어 3만권쯤 팔렸다. 『그러면 음악평론가로 나서시지요』 그의 대꾸는 이렇다. 『음악이 본업이 되면 괴롭지 않겠어요? 그냥 애호가로 남는 게 가장 좋지요, 뭐』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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