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6월 12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외과의사 이모(37)씨 집에서 발생한 모녀 피살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 아내(당시 31세·치과의사)와 한살배기 딸의 살인범으로 기소된 이씨는 과연 유죄인가 무죄인가. 직접증거없이 정황증거만 있는 「한국판 OJ 심슨사건」을 두고 이씨의 진범여부를 가리기 위한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은 사건발생 3년10개월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1심 사형, 2심 무죄. 그리고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 유무죄가 뒤바뀌며 기소후 2년 7개월여 끌어온 치과의사 모녀 피살사건 재판은 20일 파기환송심 담당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채영수·蔡永洙부장판사)가 변호인단의 외국 법의학 교수 2명에 대한 증인신청과 범행현장 재연 모델하우스 화재실험 감정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재판부는 이날 속행공판에서 『외국법의학 교수 2명을 증인으로 소환하고 한국소방학교에 의뢰한 화재재연 감정신청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스위스 로잔대 법의학교실 토마스 크롬페처박사와 영국 스코틀랜드 런디대 법의학실 데릭 프라우드교수가 국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된다.
특히 이 교수들은 국내 법의학 교수들의 사체 감정결과를 전면 부정하고 있는 버나드 나이트세계법의학회장의 추천을 받은 법의학자들이어서 모녀 사체감정을 둘러싼 사망시간추정 논쟁이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나이트씨는 최근 변호인단을 통해 법원에 제출한 감정의견서에서『증거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하는 형사사건에서 시반(屍斑)과 시강(屍剛) 및 위의 내용물 분석만으로 추정된 사망시각을 유죄의 증거로 단정하는 것은 현대 법의학에 대한 기본적 지식과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특정시간대로 사망시각을 추정할 수 없으며 제시된 자료로 볼 때 모녀의 사망시각은 시체 발견부터 1~12시간 사이일 것』이라고 밝혀 당일 오전 7시이전으로 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서울대·고려대 법의학 교수들의 감정결과를 부정했다.
이씨가 사건당일 오전 7시께 집을 나섰고 숨진 모녀의 발견시점이 오전 9시30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씨가 범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변호인단은 또 『이씨가 아파트를 나선 지 1시간 40~50분이나 지난 뒤에 아파트에서 연기가 발견된 것은 제3의 인물이 범행했다는 것을 반증한다』며 발화시각과 당시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범행 현장과 같은 모델하우스를 만들어 화재실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내 법학자들은 『사망추정시간을 두고 서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며 『현재로선 세계법학계나 나이트회장의 권위나 공신력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관점에 따라 간접증거가 직접증거만큼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고 사체 감정외에도 다른 많은 정황증거가 확보된 만큼 나이트씨의 주장이 중요한 변수는 아니다』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이미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실험을 해본데다 이씨가 범행시각을 조작하기 위해 훈소(燻燒)현상을 이용, 자연방화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씨는 95년6월12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부인 최모씨와 한살배기 딸을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욕조에 담은 채 불을 지른 혐의로 같은해 9월 구속기소됐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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