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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관능과 추억 사랑을 일깨우는 요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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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관능과 추억 사랑을 일깨우는 요리 이야기

입력
1999.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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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신문 요리 페이지의 독자가 사라질 수 있을까? 음식은 문화 가운데서도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맞닿아 있다.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몸의 일부처럼 느끼듯이, 된장과 김치 맛도 역시 몸의 한 가지다. 오히려 언어보다 훨씬 원초적이고 감성적인 「기록」이다.

일본 인기작가 무라카미 류의 요리소설집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는 음식에 대한 32가지 이야기. 외국의 고급한 식당에서 비싼 요리를 먹으며 성과 관련해 쏟아내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패스트푸드나 우리 음식 삼계탕에 대한 글도 들어있다.

무라카미는 최고급 프랑스 요리에서 패스트푸드까지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미각 뿐만 아니라 오감을 총동원해 우리 속에 숨어 있는 관능과 추억을 일깨운다. 소설은 대부분 이국적인 풍경, 현실을 떠나있는, 무언가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음식, 식사를 같이 하는 사람을 등장시켜 읽는 사람의 시각을 자극하고, 미각을 유혹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강렬한 상징과 여운이다.

그가 로스트 프라임리브스(최고급 쇠갈비를 살짝 구운 것)를 열한 번 성형 수술한 여자의 얼굴에 비유하거나, 송아지 갈비를 브로드웨이의 마약 중독 소녀 몸에 비유할 때, 인생의 처연함을 읽어낼 수 있다. 무스 쇼콜라(달걀과 초콜릿을 섞은 디저트)는 서로 섞이지만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랑의 이야기다. 핫도그는 늙은 루마니아 이민 남자의 가족에 대한 추억. 양키스 스타디움 햇볕 아래서 아내, 아들과 양배추와 겨자가 가득 든 핫도그를 즐겨 먹었던 기억. 핫도그는 그 맛보다도 가족과 야구를 본 뒤 충만한 만족의 상징이다.

연작형태인 이 소설은 한 유한족 남성의 미식 기행으로 읽을 수 있다. 작가 자신도 서문에서 호화롭게 유럽을 여행하고 다닐 때 쓴 소설이라고 말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자의 「배부른 소리」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류는 「낭비가 미덕」이라고 믿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감성과 기발한 상상력까지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미식」이 때로 두려울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망명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외롭고 슬퍼졌다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수프를 먹고 순간에 모든 것을 잊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건 좀 두려운 일이 아닐까요?』 헝가리 음식을 즐기면서 「수프가 누구의 고뇌를 잊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곰곰이 생각했던 것이다」(「어머니의 수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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