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2가 피자헛 명동점. 매장 종업원들은 손님의 입술모양을 읽거나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받을 뿐 말이 없다.이날 종업원들은 청각장애인 학교인 서울 선희학교(교장 김영환·金榮桓·63) 고등부 학생들. 피자헛 코리아(사장 조인수·曺仁秀)가 장애인의 날(20일)을 앞두고 비장애인들과 몸으로 부딪치며 더불어 호흡할 현장체험 기회를 마련해 주자며 여학생 10명을 1일 매장봉사요원으로 초청한 것이다. 매장을 맡긴 시간은 오후2시부터 5시30분까지. 지난해 12월 「장애인먼저실천협의회」 대상을 받은 이 업체가 직원 수화교육과 문자공중전화서비스에 이어 청각장애인을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시작은 어색했다. 학생들은 조금 경직됐고 매장에 들어선 손님들 역시 예기치 않은 상황에 약간은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바뀌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교대도 하지 않으려 할 만큼 즐겁게 일했고 즉석에서 배운 수화로 『고맙습니다』라고 답하는 손님도 있었다. 가족손님들 사이에서 『저 언니들은 단지 소리를 잘 듣지 못할 뿐이란다』며 어린아이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그동안 가졌던 편견이나 서먹함이 모두 없어졌다』는 손님도 있었다.
주문을 받고 배달을 하느라 바삐 움직이던 3학년 강모(18)양은 『평소 해 보고 싶던 일이라 너무 즐겁다』며 『이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메모지에 적어 건냈다. 청각장애인 대상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수화통역과 취업기회의 확대. 더이상 보호와 복지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장애우(友)로 보아달라는 것이다.
번잡하고 왁자한 명동 속의 「조용한 음식점」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작지만 소중한 기회였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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