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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정신]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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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정신]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입력
1999.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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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은 콘크리트지만 사월의 봄볕은 노철학자의 연구실을 훈기롭게 하고 있었다. 서울 방배역 사거리에 있는 철학문화연구소.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가 거의 날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10시면 모습을 나타내는 연구실이다.내년이면 팔순. 워낙 살집이 없는 몸이어서 옷은 헐거워 보였지만 악수하며 전달되는 손의 힘은 나이답지 않았다. 은근한 힘… 정년 퇴임으로 대학을 떠난 뒤에도 12년동안 철학계간지 「철학과 현실」을 발행하고, 11년동안 「사랑방철학」 강좌를 이끌어 온 노학자의 힘이었다.

15일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국내 철학계의 기둥」 김태길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개인주의와 물질만능

『많은 사람들이 경제위기 때문에 가치관의 혼란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가치관이 잘못되어 위기가 왔습니다. 문제는 두가지입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첫째입니다. 서구식 개인주의가 들어오면서 공동체를 무시하고, 남을 존중하지 않는 잘못된 풍토가 만들어졌습니다. 둘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나 권력, 향락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은 경쟁성이 강하기 때문에 자연히 남을 제치고 더 많이 차지하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결국 이기주의로 이어집니다』

김 교수는 재미난 예를 들었다.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가능한 대통령, 갑부가 되려고 많은 사람들이 싸운다고 그는 말했다. 생명이나 사상, 종교, 학문, 예술, 더 넓게는 사랑 등 내면적 가치를 차지하기로 한다면 그것은 한정된 사람이 아니라 얼마든지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새 윤리운동 필요

『올해 안에 새로운 윤리운동을 펼치려고 합니다. 착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찾는 운동입니다. 그동안 철학문화연구소와 「철학과 현실」을 통해 이런 작업들을 했습니다만, 저변이 넓지 못하고 너무 더딥니다. 연구소에 참여하는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철학적인 이론체계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명무실한 운동이 되지 않는, 실천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운동으로 이끌 생각입니다』 그는 이 정도로만 운동 준비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실체가 드러나고 좋은 결과를 얻기 전에 말이 앞서서는 제대로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인문학의 위기

김 교수는 인문학이 최근 들어 상당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데 공감했다. 『대학을 경영 논리로 이끄는 것은 잘못입니다. 교육은 경영의 논리로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문사철(文史哲·문학 사학 철학)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대학을 경영의 논리로 재려는 잘못된 교육관에서 온다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교수들, 인문학자들도 책임이 있고 반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인문학 교수들은 전임강사만 되면 바둑판만 끼고 있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다는 식의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학생의 이해정도나 관심과는 무관하게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가르치고, 인식론과 존재론을 천편일률로 강의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유교, 제3의 길?

『21세기 문명의 대안은 미국식 자유주의, 돈의 논리, 무한경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미국은 강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하겠지만 우리는 약하니까 그렇게 할 까닭이 없다는 논리. 하지만 『끌려가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도 김교수는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아시아적 가치니, 유교적 자본주의니 하는 이야기들은 단순한 대안에 그칠 염려가 있다고 했다. 『경제논리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 또 극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정신과 인문학을 숭상하고 공동체의 협동하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유교 전통을 접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제2건국위원회 활동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자기단속부터 잘 하고 그런 작업을 해야한다』고 한마디했다. 당리당략에 얽매여 싸움하면서 말만 앞세워서는 국민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이다.「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가 펼치는 운동도 「자기개혁」 「솔선수범」의 미덕에 적지않이 기대고 있으리라 알 수 있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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