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생활수기 공모 마감이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의 역대 수상작들에는 우리 여성들이 걸어온 발자취가 그대로 담겨 있다.척추마비가 된 외아들을 돌보느라 쉰살에 공장에 취직했던 이계출할머니(83년 1회 최우수상)를 비롯해 취업현장에서 여성차별을 고발한 강신혜씨(88년), 해직교사 가족의 아픔을 그린 김혜심씨(93년), 남편의 도박과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이옥순씨(97년)등 굳센 의지로 고난을 극복해온 여성들의 잔잔한 감동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뉴질랜드인과의 펜팔 이야기를 쓴 이원숙씨(96년)나 중년이 되어가는 여성의 내면심리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묘사한 정성희씨(94년)처럼 여성만의 섬세한 감성을 기록한 수기들도 많았다. 이중 지난해 「이 없이 잇몸으로 만들어가는 행복」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김미순(41)씨의 근황을 소개한다.
서울 은평구 불광1동 북한산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카페 「마운틴」. 히말라야산 그림이 걸린 베니어합판 문을 열면 8∼9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테이블 3개가 놓여 있다. 보증금 1,000만원에 바닥면적이 4.5평 밖에 안되는 이 조그만 카페는 김미순씨와 남편 지동암(47)씨의 집이자 직장이며 전재산이다. 실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1평 남짓한 「다락」은 부부가 어깨를 맞대고 잠자는 침실. 누우면 천정에 손이 닿을 정도지만 부부의 얼굴 표정은 언제나 넉넉하고 푸근하다. 언젠가 저 멀리 히말라야에 있는 에베레스트며 K2, 안나푸르나, 낭가파르바트 등 큰 봉우리들에 올라서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16회 여성생활수기 공모에 당선된 뒤 김씨부부의 삶에는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은 틈만 나면 산에 오르는 것을 보고 「간첩」으로 의심했던 주민들과 한 가족처럼 친해졌다는 것. 잊고 지냈던 옛 친구들과도 연락이 닿았고, 건물 주인은 월세를 25만원에서 20만원으로 깎아주었다. 정장이 없어 등산복 차림으로 친지 결혼식에 가도 이젠 누구도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들꽃을 심은 화분과 김치 따위의 선물을 들고 찾아온 독자들이나 멀리 미국에서까지 날아온 수십통의 격려편지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무소유의 삶」에 새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김씨는 『커피 한잔 마시려고 일부러 찾아온 고마운 손님들 덕분에 IMF도 모르고 지냈다』면서 『하루에 커피 10잔을 팔아 한달 75만∼80만원을 벌어도 도시로 나가 돈 쓸 일이 없으니까 풍족하다』며 즐거워한다.
김씨부부는 「이 없이 잇몸으로 사는」 생활이 몸에 배있다. 밥그릇이 국그릇이 되고, 과일접시엔 밥을 담았다 반찬을 담았다 한다. 친구들이 놀러와 그릇이 부족할 땐 한 곳에 모두 담아 모듬밥을 내면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머리는 서로 깎아주기 때문에 결혼 후 한번도 이발소나 미용실에 가본 적도 없다. 요즘도 주말이면 「침실」에 깔려 있는 메트리스를 들고 산에 오르는 게 일.
도시 전경이 발아래 깔리는 북한산 봉우리에서 부부는 총총 빛나는 별을 세며 히말라야에 오르는 꿈을 꾼다. 예수회 수사(修士) 출신으로 84년 김씨와 결혼한 남편 지씨는 『내 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연이 만들어준 「별장」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욕심 없이 자연과 동화하는 것이 정신적으론 가장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이라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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