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정부에서 발표한 각종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개는 정치적 동기에 의해서 애초에 설정한 정책이 수시로 변경되고 이에 따른 정책의 일관성 결여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어 정책의 효과가 반감되게 마련이다.전통적으로 정부의 예산정책과 통화정책이 불신의 과녁으로 도마위에 올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한다. 요즈음처럼 불경기에 투자활성화와 실업축소를 위해 정부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줄여 적자재정으로 대처하는 것은 국민의 호응도가 크므로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손쉬운 정책대안으로 채택된다.
그러나 경기회복이후 적자재정을 축소하거나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세금을 늘리고 정부지출을 삭감하여 흑자재정을 계획한다면 선거민들로부터 반발을 사게 되어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가안정을 위해 연초에 설정해 두었던 통화증가율도 정치적 동기에 의해 이런저런 연유에서 지켜지지 못해 국민들의 물가오름세 심리를 부추겼던 사례를 과거에 매년 경험해왔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뷰캐넌 교수는 정치경제적 원인에 의해서 누적된 적자가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성장의 애로요인으로 작용하기보다는 「균형예산」을 입법화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똑 같은 논리에서 프리드먼 교수는 준칙(準則·룰)에 의한 통화정책을 주장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약속을 지킴으로써 경제정책의 입안이나 집행에서 정치적 요인을 배제할 것을 권고한다.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각종 정부정책이 내년의 총선을 의식해서 그 실시를 연기하거나 개혁의 강도가 훼손되었다면 정책당국자, 정치인은 물론 이를 용인한 국민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개혁으로 인한 고통은 단기간에 널리 파급되어 국민에게 불만으로 다가올지라도 그 혜택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개혁은 쉽지 않지만 정치인과 정책당국자들은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무조건 내년 총선 이후로 실시를 연기하는 것이 능사가 되어 버렸다.
부가가치세 과세특례폐지, 의약업 분업문제 등 각종 시급한 정책현안들의 논의나 실시가 내년이후로 미루어졌는가 하면 정부조직개편 등은 그 개혁강도가 반감되어 국민불신의 중요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로 지난 1년동안 금융부문과 재벌기업, 그리고 근로자 등 민간부문의 구조조정의 고통을 상기하면 이번의 정부조직개편안은 개혁이 실종된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정부를 그 어느 국민이 신뢰하겠는가. 정부 여당내 혼선이 극심했던 전국민연금제실시도 당국방침이 워낙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차라리 냉소적이기까지 한 상황에 이르렀다.
균형예산의 입법화나 「룰」에 의한 통화정책 등을 제도화하지 아니하더라도 개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지속적 실천의지가 대다수 정치인이나 정책당국자에게 함께 한다면 내년 총선이란 의례적 정치행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각종 정부의 개혁정책은 국민의 신뢰없이 그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어떠한 정치적 동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되고 확고한 정책입안과 이의 실천의지만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단기간의 정권획득이나 다수당이 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정치인은 여야 할 것 없이 도처에 흔한데 이의 벽을 뛰어 넘어 실로 국가장래를 걱정하는 지도자는 찾기 어려운 요즈음의 우리 사회가 아닐까. 대통령이 정치인이기보다는 지도자로 남겠다는 자세로부터 정책의 신뢰회복은 물론 정부의 개혁정책이 가속도를 더 할 것이다.
이만우·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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