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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씨-박재규총장 좌담] 금창리협상이후 한반도 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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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씨-박재규총장 좌담] 금창리협상이후 한반도 기류

입력
1999.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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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북미간 금창리 지하시설 협상이 타결된 뒤 한반도에서는 냉전구조해체물결이 형성되고 있다. 북한이 이같은 한반도 기류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북한의 향후 행보 예측을 위해서는 속사정을 관찰해야 한다. 한국일보는 황장엽(黃長燁·77)전노동당비서와 박재규(朴在圭·55)경남대총장의 좌담을 마련, 북한실상과 김정일(金正日)체제의 목표 등을 점검했다. 97년 2월 망명한 황 전비서는 김일성대총장, 최고인민회의의장 등을 역임하면서 주체사상의 기틀을 마련했다. 박총장은 30여년간 북한문제를 연구해왔다. /편집자주박재규=지난해 8박9일간 북한을 방문하면서 들은 바로는 연간 알곡 수요량은 450만톤인데 근래 생산량은 200만~250만톤에 불과합니다. 식량난은 94년이후 갑자기 생긴 현상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 축적된 만성적 현상인가요.

황장엽= 만성적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85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자급이 이뤄지다가 그후 매년 100만톤이 부족했습니다. 94년 김일성사망후 지방의 식량배급이 중단됐고 95년 홍수피해이후 아사(餓死)현상이 나타났습니다. 96년 11월 노동당 조직부의 통계책임자에게 알아본 결과 95년 아사자는 당원 5만명을 포함해 50만명이상이었죠. 96년 11개월동안 아사자는 100만명에 달했습니다. 97년에도 200만명정도 희생됐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97년까지 280만명이 아사했을 것이라는 중국 신화사통신보도는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식량난의 원인과 식량난 해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황=북한당국이 영농자재를 농민들에게 공급할수 없는 점이 원인이겠지요. 또 농민의 근로의욕도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군비확장과 김일성 김정일부자 우상화 작업에만 열을 올리는 북한당국에게 있습니다. 일례로 김일성 시신을 안치하는 금수산궁전을 개조하는데 8억9,000만달러가 소요됐습니다. 강냉이 600만톤을 구입할 수 있는 돈입니다.

박=북한에서는 헌법적 직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김정일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김정일이 총비서와 국방위원장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 따라 두 기관간 파워게임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황=권력문제에 앞서 수령절대주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스탈린주의에 따르면 노동계급은 사회이익, 공산당은 노동계급 이익, 수령은 공산당의 이익을 대표합니다. 그러나 수령절대주의는 수령이 있어야 당이 있고, 당이 있고서야 노동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또 육체적 생명은 부모가 주었지만 육체적 생명에 비할바 없이 귀중한 사회정치적인 생명은 수령이 주었다는 논리도 동원됩니다. 저도 여기에 기여했다고 봐야죠.(웃음) 제가 이론담당 서기로 일할 때만 해도 주체사상은 스탈린주의와 민족주의가 혼합된 정도였는데, 66년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김정일이 스탈린주의와 유교사상을 합한 사상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김정일은 74년이후 제2인자의 권능을 넘어섰습니다. 45년부터 74년까지가 김일성 시대였다면, 75년부터 94년은 김일성-김정일의 이중정권 시기였습니다. 85년부터는 「김정일-김일성정권」으로 불러야 적절합니다. 따라서 수령직위가 중요하지 총비서, 국방위원장 등의 직위는 별 의미 없습니다. 군과 당의 관계에 관해 말한다면 당은 정책에 관여하지만 군은 발언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김정일이 교묘히 권력을 배분한 것이죠.

박=만약 북한에서 유고(有故)상황이 발생한다면 누가 공백을 메울 것으로 봅니까. 김정일이 후계자를 키운다면 누구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합니까.

황=유고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쉽게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뒤 화궈펑(華國峰)이 과도적으로 집권했듯 김정일과 인척관계에 있는 자가 권좌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정일의 자녀는 아직 20살 미만입니다. 그래서 후계자를 점치기는 어렵습니다.

박=북한은 최근 간부들을 싱가포르 등에 보내 자본주의를 배우게 하는 한편 주체농법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또 시장도 활성화하고, 금강산관광을 허용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20년전 중국식의 제한적 개혁개방을 수용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북한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개혁 개방의 길로 나서게 될지 여부를 말씀해주십시요.

황=북한의 제1목표는 수령절대주의 입니다. 일부 자본주의적 정책을 도입하고, 단편적인 개혁으로 체제와 정권의 본질이 변화하지 않습니다. 시장경제와 외자도입을 체제변화로 간주해서는 안됩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도입돼야 합니다.

박=물론 북한이 급격한 체제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북한정권이 개방정책을 추진해야만 정권도 살고 인민도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선생께서는 김정일을 압박하고, 김정일체제가 붕괴돼야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현정부는 북한의 생존을 돕고 전쟁을 막는 포용정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을 너무 구석으로 몰면 전쟁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황=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데 동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주민, 지도부)의 99%는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전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쥐는 궁지로 몰리더라도 고양이를 물지 않으며 물더라고 고양이를 이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력과 상관없는 식량, 의약품을 북한에 지원하는 것은 좋습다. 하지만 경제회생을 위한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경제난으로 북한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회생하면 구멍도 사라질 것입니다. 남측이 북한에 강경대책을 세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설사 북한이 핵을 가졌다고 해도 큰 변수는 아닙니다.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 붕괴됐습니까.

박=황선생의 주장대로라면 경협 등을 하지 말고 인도적 지원만하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비료는 어떻습니까. 아울러 북한의 에너지 사정도 짚어보죠.

황=비료를 지원하면 자력갱생을 이룩할 것이고, 북한당국은 이같은 성과를 주민에게 선전할 것입니다. 비료 대신 식량을 줘야 합니다. 96년 덕천탄광을 시찰할때 전기부족으로 탄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또 평양화력발전소의 가동이 안돼 노동당 어항의 물고기가 얼어 죽기도 했죠.

박재규=북한은 2월 국가보안법철폐, 통일애국인사의 활동보장, 외국과의 군사훈련 중지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며 남북대화를 제의했습니다. 이 제의의 진의를 어떻게 분석해야 할까요.

황=김정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령절대주의의 보존과 경제난 해결이지요. 북한은 남조선경제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남북대화에 적극 응할 것입니다. 북한의 목표는 또 남측에 평화적인 분위기을 조성한뒤 좌익정권이 들어서게 하는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남한을 점령하는 것이 다음 수순이죠. 이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박=70년대 주체사상은 중소갈등과정에서 어느 편에도 서기가 곤란한 처지를 타개하고, 대내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만이라도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등장했습니다. 황선생께서는 인본주의에 기반을 둔 주체철학을 개발했지만 김부자는 우상화에 이용했습니다. 김부자가 황선생께서 마련한 철학대로 통치했다면 북한은 좀더 나아졌을 것으로 보십니까.

황=가정(假定)은 가정일 뿐이죠. 제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힌다면 사회주의가 생산수단을 사회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의 가장 나쁜 개념은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입니다.

박=그런데 선생께서 제기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바로 북한의 유일적 사상체계확립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황선생께서는 최근 출범한 탈북자 동지회의 명예회장직을 맡았는데요.

황=여기에 와보니 탈북자들이 뿔뿔이 있으면서 제몸하나 건사하지 못해요. 탈북자동지회는 탈북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업을 추진하고, 이들에 대한 애국주의 사상교양을 통해 통일을 위한 의미있는 일을 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제3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을 돌보는 일에도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박=우리 국민과 북한연구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황=국민 사이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약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 남한이 평화 기분(분위기)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수령절대주의를 구현하려는 북한체제에서는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글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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