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예이츠 지음·정현종 옮김/ 민음사 발행봄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리므로 나는 발레리 식으로 말해서 그 무언가를 큰 열정으로 사랑하고프다. 지상에서 비를 머금고 있는 풋풋한 풀들과 나무들과 그리고 도회의 콘크리트 숲까지도.
옛날 시인들은 자연의 발견, 인생의 예지를 즐겨 노래해왔다. 하지만 오늘의 시인은 인공자연에서 사는 까닭일까, 지적이며 상상적인 것들에 더 깊이 몸을 담그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제 시인들은 인생의 시인, 자연의 시인이라기보다는 시인의 시인, 인간관계의 시인이기를 지향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니 그런 이유에서 나는 더 깊은 삶의 조응과 천착을 보여주는 시인들의 시를 즐겨 읽어왔다. 「첫사랑」은 그런 점에서 내가 깊이 사랑하는 시집이다. 『수양버들 공원에 내려가 내 사랑과 나는 만났습니다… 나뭇잎 자라듯 쉽게 사랑하라고 그녀는 나에게 말했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어 곧이 듣지 않았습니다』고 시인이 노래할 때 나는 행간에 숨겨진 좌절의 경험보다는 전면에 돌올하는 사랑의 감정을 먼저 읽는다. 예이츠는 오래 사랑받을 감정을 쉬운 언어로 직조한 20세기의 마지막 시인은 아니었을까.
대시인의 면모가 언제나 그러하듯 사실 예이츠는 단순한 서정시인이 결코 아니다. 엘리어트의 지성과 딜런 토머스의 열정과 밀란 쿤데라의 유머가 그 속에는 모두 다 들어 있다. 나도 그를 닮은 시를 쓰고 싶다. 아니 못 쓰면 어떠리. 그럴 때 나는 저 「비잔티움 항해」에 나서면서 벽면의 모자이크 속에 숨어있는 신의 성화 속에 현인이 나를 방문해 주기를 간절히 기도해 보는 것이다. 오, 우리여, 관능의 음악에만 사로잡혀 삶의 지혜, 노년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우리여!
비오는 날 「첫사랑」을 읽으면, 이런 기도가 저절로 새어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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