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대로 느낀대로 하라" - 이태준의 「문장강화」에서최종태/조각가
내 나이 서른이 넘어 마흔이 될 무렵의 일이었다.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참으로 막막하였다. 손으로 맨 땅을 파는 것보다 더 힘들다 할 지경이었다. 어떤 날 문득 이태준의 「문장강화」란 책이 생각났다. 중학교 다닐 때 읽은 것인데 그 속에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나 하는 대목이 있다. 그 중에 한 구절, 고전을 많이 읽고 많이 쓰되 『본대로 느낀대로 하라』는 말이 있다. 20년을 까맣게 잊었던 그 기억이 기적처럼 되살아난 것인데 가슴에 불이 확 붙는듯 하였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그 말의 참 뜻을 다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고전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좋은 그림 많이 본다는 뜻이고 , 많이 쓰라는 것은 그림을 많이 그리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만한데 정작 「본대로 느낀대로 하라」는 대목에서 영 감이 잡히질 않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인체, 또 이상하게도 가느다란 인체를 만들어낸 조각가 자코메티가 말하기를 『나는 내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고, 내 마음에 비치는대로 만든다』고 하였다. 그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힘주어 말한 뜻을 이제사 좀 알 것 같다.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세기를 대표하는 대예술가가 그렇게 힘주어 말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가 있다. 임금님 머리를 깎으러 궁성에 들어간 사람은 살아서 나오는 일이 없었다. 특별히 약속하고 살아서 나온 이발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임금님 귀가 나귀 귀와 같이 생긴 것을 보고 그 말을 참노라 병이 날 지경이었다. 참다 못해 한적한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매일같이 『임금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언제부터인가 대나무들이 바람을 탈 때마다 숲에서 그 말이 메아리쳐 나왔다는 이야기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진실을 바로 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그것을 바로 표현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고, 또한 그것을 알고서 말하지 않고 참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인가 보다. 피카소는 말했다. 『붓을 놓고 있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나는 오늘도 내가 본대로 느낀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아침에 반성하고 저녁에 또 반성을 한다.
최종태/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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