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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부산공동어시장 경매사 지상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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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부산공동어시장 경매사 지상하씨

입력
1999.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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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새벽 3시 부산 서구 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 칠흑같은 어둠속에 도시가 깊은 잠에 빠져있는 시각,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이곳은 불야성이다.전날 연근해에서 잡힌 생선들이 컨베이어를 통해 부려지고 40, 50대 아낙네들이 생선더미를 헤치며 큰 놈, 작은 놈을 선별하는 손놀림이 잽싸다.

1㎞ 남짓한 선창을 따라 이런 광경이 펼쳐지는 곳은 대여섯군데. 연근해 주력선단인 선망 배가 들어온 이날은 삼치, 고등어, 전갱이가 주인공이 됐다.

상품성에 따라 생선상자 정렬을 모두 마친 새벽 6시 정각. 웅성거림 속에 위판장 중간 경매대 쪽으로 수십명의 중매인들이 몰려들었다.

경매대에 선 경매사는 맨 앞쪽 상자를 가리키며 「가~격」이라고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왼손과 오른손 손가락을 펼치며 중매인들에게 시작 단가를 제시한다.

경매사 지상하(54)씨. 그는 31년째 이같은 「새벽인생」을 살고있다. 지씨는 경매가 없는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3시 어김없이 어시장으로 출근한다. 배가 선창에 접안할 때부터 나와 생선의 선도, 크기, 물량 등 현장 사정을 꼼꼼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중매인들에게 시작 단가를 정확히 제시할 수있다. 시작 단가 제시는 경매인의 절대적 권한. 생산자(어민)에게는 『오늘 제값을 받았다』, 중매인들에게는 『적정한 시세였다』는 말을 듣는 게 일터에서의 보람이다.

경남 거제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지씨는 나름대로 『생선을 좀 안다』고 우쭐대며 입사했으나 10년동안 수습과정을 거쳐야 했다. 매일 선배들의 옷가지에서부터 신발까지 빨아놓는 게 수습치레중 하나였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지리한 수습과정은 마찬가지다. 여전히 도제식 수습전통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요즘 지씨는 기분이 별로다. 한일어업협정이후 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물량이 줄어 몸은 편한데 마음이 편치 않아요』 지씨는 『예년 이맘 때는 발디딜 틈이 없었어요. 위판장 끝까지 「고기의 바다」였죠』라며 담배 한개피를 빼 물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가교역인 그는 경매장 먼 발치에서 장을 지켜보는 어민들의 낯빛을 보고 살아 왔다. 어민들의 아픔이 결국 자신의 아픔일 수밖에 없다.

전국 최대 생선위판장인 부산공동어시장의 정규 경매사 5명중 최고참인 지씨는 그 동안의 세월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기도 했지만 남부럽지 않게 딸 하나, 아들 둘을 대학까지 보냈다.

지씨는 『어시장이 위판수수료 수익으로 운영되는 만큼 어민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셈』이라면서 『어민은 그래서 우리들의 하늘』이라고 말했다.

/부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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