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문이 바뀌고 있다. 컴퓨터 체제의 도입으로 제작 환경이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거대 통신에 취재를 의존하는 것도 새로운 일이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일, 바뀌지 않을 일들이 더 많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취재하고, 정확한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전한다」는 기자정신이다.백상(百想) 장기영(張基榮·1916∼77) 한국일보 창간 발행인. 금융인과 관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피는 언론인」이었던 사람. 시대를 앞서 한국 현대언론의 새 장을 열었던 인물. 그의 행적을 살피는 일은 새 천년을 맞는 한국 언론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안고 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경원대 안병찬(安炳璨·신문방송학)교수가 최근 펴낸 「신문발행인의 권력과 리더십_장기영의 부챗살 소통망 연구」에서는 50년대부터 20여 년 간 신문발행인이면서 기자였던 백상의 면모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신문 발행인을 연구한 국내 첫 작업인 이 책을 중심으로 언론인 백상의 면모를 살펴본다.
■부챗살 통한 정보의 장악·확산 백상은 발행인이면서 편집국장과 주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는 기사의 취사 선택 등 편집은 물론 제작에 적극 개입했다. 안교수는 백상이 「게이트키핑」(신문 소유주의 편집 관여)에 능했고, 독특한 스타일의 「부챗살」 조직운영을 펼쳤다고 분석했다.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남재희(南載熙) 전노동부장관은 『백상은 사람을 거침 없이 부챗살 뻗듯 지휘했다』고 회고했다.
큰 키에 육중한 몸집, 굵고 또렷한 인상에서 풍겨나오는 리더십도 이런 소통과정에 기여했다. 일선 기자들과 신문 제작자들은 중요한 정보의 대부분을 「부챗살 소통망」을 통해 백상에게 보낸다. 보내온 정보를 바탕으로 백상은 직접 신문제작 현장에 뛰어들어 「사령관」이 되고(공식적인 게이트키핑), 그의 전용 지프를 기자에게 내주거나 전화로 호령하며 속전속결 취재(비공식 게이트키핑)를 강조했다. 안교수는 이같은 방식은 한국 언론사에서 찾기 힘든 매우 독특하고, 큰 성과를 낳은 정보소통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일대일로 던지고 당기기 정보를 집약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백상이 이용한 수단도 끊임없이 입에 오르내린다. 백상은 「새벽 전화」나 「출두 호출」같은 사적인 인간관계는 물론 「라운드 테이블」 회의, 매주 열린 「화요회」라는 독특한 사내 모임을 통해 끊임없이 「기자 정신」을 강조하고, 분발을 촉구했다. 그는 기자 개개인과 직접 얼굴을 맞대길 즐기는 신문발행인이었다. 이 만남에서 귀에 거슬리더라도 남의 말을 열심히 청취했다. 또 언어, 특히 사설(社說)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졌고, 남의 글을 고치는 데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언론 사주로 평가받고 있다.
■상업신문의 길 『나는 두 자루의 만년필을 가지고 다 써 보았다. 하나는 사설을 고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문사 수표장에 사인하는 것이다』 백상은 「편집국은 광고국의 시녀」라는 말도 자주 했다. 한국 언론이 보편타당성만을 앞세운 「정론지」의 입장에서 벗어나 기업임을 선언한 첫 번째는 바로 한국일보의 창간이었다.
백상이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신문기업가」라는 평가를 얻은 것은 관념성에 반대하고, 시장을 추구하는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시장경제에서 자본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경영이란 있을 수 없고, 경제의 독립이야말로 독립적인 신문을 만드는 관건이라는 철학이 있었다.
백상은 당시 신문으로는 이례적으로 다양한 문화·체육사업을 펼쳤고, 초창기 행사장에서 직접 입장권을 관리한 일도 있었다.
■신문의 공정성과 백상의 추진력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이 사형선고를 받자 한국일보는 대법원 판례를 비판하는 3회 연속 사설을 냈다. 언론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백상은 사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일을 감행했다. 하지만 백상은 편벽하게 신문을 만들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한 대법원 판사가 반박의 글을 써 보내자 역시 사내의 비판을 받으면서 글을 실어주었다. 『신문은 어떤 경우에도 기회균등을 실천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언론의 공정성』이라고 그는 말했다.
당시 김중배(金重培·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기자가 타사보다 한 발 앞서 죽산의 처형 결정 뉴스를 취재, 보도한 뒷 얘기에서도 백상의 추진력과 신문에 대한 애착이 드러난다. 취재 사실을 듣고 윤전기를 멈춘 상태에서 백상은 기자에서 『법무장관을 만났지만 오늘 처형될 것 같지 않은데, 누구에게 확인했나?』고 물었다. 그리고 직접 취재해 사실을 확인했다. 백상은 신문발행인이면서, 말단 보조기자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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