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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이름없는 이의 '질책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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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이름없는 이의 '질책 편지'

입력
1999.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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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따라 우편물이 여러 통 배달되어 왔다. 보낸 이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편지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뭔가 새로운 내용이 들어 있을 것 같아 호기심을 갖고 봉투를 뜯었다.속지에도 보낸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 뭔가 심상찮은 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담긴 내용은 길고도 무거웠다. 그런 내용의 편지를 받아본 건 생전 처음이었다.

그는 나를 잘 안다고 했다. 가까이서 나를 늘 지켜봐왔노라며,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줬다. 그러나 편지의 핵심은 대부분 나를 향한 일방적인 질책이었다. 내가 쓴 글을 많이 읽어보았다는 그는 내가 쓴 글에 담긴 나의 생각과, 그의 눈에 비친 나의 행동에 차이가 있음을 꼬집었다.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니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보낸 이를 추적해보려고 했지만 확인이 불가능했다. 가까운 사람 중에 편지에서 쓴 것 같은 말투를 쓰는 사람을 찾아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편지를 잘 접어 지갑에 넣었다. 언젠가 그를 만나게 되면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시인할 것은 시인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갑 속의 편지는 언제나 내 마음을 무겁고 우울하게 했다. 누군가에게 노출되어 감시를 당하며 산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울적해지고 사람들이 싫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쩌면 그가 편지를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편지에 쓴 말이 생각나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았고, 때로는 분한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었다.

편지 사건 후 나는 나도 모르게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글을 쓰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마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편지는 어느덧 내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지금도 가끔 지갑에서 그 편지를 꺼내 읽어본다. 종이는 이미 많이 낡고 해졌지만, 내용은 여전히 내 폐부를 찌른다. 그 편지 내용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때까지, 나는 그 편지를 늘 지갑에 넣고 다니려 한다. 그러나 그 편지를 보내준 이가 누구인지는 별로 확인하고 싶지 않다.

/이의용·쌍용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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