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국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 -「줄탁동기(口卒啄同機)」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려 할 때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야 한다는 말이다.
김종필(金鍾泌)총리가 그 성어를 즐겨 쓰고 있다. 내각제라는 「새끼」가 온갖「장벽」을 뚫고 세상에 나올 때까지 그 「어미」가 되어 가슴속에 품다 적기(適期)에 날카로운 「부리」로 나올 길을 터준다는 의미에서이다.
김총리다운 말이다. 그는 한국정치가 갈림길에 놓일 때마다 언제나 그 중앙에 서서 「자의반 타의반」 중대한 선택을 내린 정치인이다. 줄탁동기의 역할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총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온 적은 없었다. 『다음은 임자 차례』라는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말에 3선개헌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지만 그를 맞은 것은 유신이었지 권력계승은 아니었다.
한편 야당과 함께 선거정치의 부활을 꿈꾸던 「서울의 봄」은 국보위에 의한 권력찬탈로 그 막을 내렸다. 반면에 내각제로 전환한다는 각서까지 작성하고 민자당을 출범시킨 다음에는 김영삼(金泳三)대표의 마산행 시위에 허를 찔려 개헌의 꿈을 포기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출당」의 수모까지 겪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다시 권력구조를 바꾸어 놓으려는 게임이 새로운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기회」 역시 지나간 여러번의 기회처럼 김총리에게 어딘가 「함정」처럼 보인다.
권력이라는 목전의 실리만을 따져볼 때 개헌은 그 자신에게 크게 득이 되지 않는다. 내각제가 되면 각 정당내의 소수파벌마다 「캐스팅 보팅」의 위치에 선다는 기대감에서 탈당과 분당을 결행하고 새로운 공동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탐색에 나설 것이다. 그러한 춘추전국의 시대에 김총리는 자기만의 「상품성」이 없다.
오히려 캐스팅 보팅을 놓고 서로 다투는 여러 소수파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여 다수파의 낙점만을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권력구조의 개편을 포기할 수 있는 처지는 더더욱 아니다. 내각제 개헌의 기치 아래 출범한 자민련의 존재이유 그 자체가 사라지고 충청권과 대구·경북권이라는 이질적 파벌을 서로 잇는 끈이 끊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회의는 내각제 개헌의 시기를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임기말로 늦출 새로운 권력분점의 방정식만을 찾는다. 개헌을 연기하는 대가로 내년 총선에서 총리에게 더 많은 공천권을 보장하자는 「안」이 나오기까지 한다.
그러나 공천권 확대는 김총리의 고민을 덜어주지 못한다. 대권을 꿈꾸는 차세대 리더에게 개헌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보다 더 강한 출전의 명분은 없다.
그러한 차세대가 꿈틀대는 임기말에 개헌을 추진한다면 공동정부는 비판적 여론의 포화를 맞고 선거까지 질 수 있다. 개헌에 실패하고 대선에서 패배하면 자민련은 총선 때 국민회의의 「배려」로 확보한 국회의석마저 언제든지 정계개편의 태풍에 잃을 수 있다.
그래서 DJP공약이 김대통령에 의해 파기되면 공동정부로부터 탈퇴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극단론이 자민련 내에서 확산되고 있는지 모른다. 약속 파기에 탈퇴로 맞받아 치면 최소한 창당 때의 명분은 살고 당의 결속력 역시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공동정부 내에 「전운」이 감돈다. 서로가 양보하면 권력을 잃는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정작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실직자가 200만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정쟁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은 정치권 못지 않게 때를 기다린다. 당리당략만을 좇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덫에 옭아맨 정치권 내에서 벌어질 일을 지켜보다 내년 총선에서 「표」로 심판한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국민이 없는 양 『내각제 개헌은 「어른」과 「선생」이 풀 담판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공동정부 내의 일부 세력이 한심하다. 국민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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