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의 돈을 기업으로 연결시켜주는 증시는 자본주의의 심장으로 불린다. 그런데 심장박동을 불규칙하게 만드는 일이 최근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한일약품이 실권주청약을 마친지 이틀만인 2일 부도를 내자 청약자들은 『어떻게 이럴수가…』라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증자대금은 이미 납입전부터 가압류된 상태였으므로 청약자들은 청약대금 62억원을 남의 지갑에 고스란히 집어넣어준 셈이 됐다. 회사측은 증자대금을 가압류한 은행에 화살을 돌린다. 하지만 가압류를 둘러싼 분쟁을 알리지 않고 증자를 추진한 것은 남의 돈으로 빚갚으려 했다는 비난을 면키 힘들다. 앞서 지난달말에도 신동방이 실권주청약을 마친 다음날 채권은행단에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 물의를 빚었다. 신동방은 다음날 부랴부랴 전액을 돌려주겠다며 책임을 덜어보려 했지만 채권단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증시관계자들은 신동방과 한일약품의 무책임한 행태를 비난하는 한편 투자자들의 무분별한 투자행위도 꼬집고 있다. 한일약품만해도 지난해 큰 폭의 적자를 낸데다 모기업인 신동아그룹(대한생명)은 이미 와해됐고 , 대주주들은 증자에 한푼도 참여하지 않은 사실까지 공시된 상태였다. 『알고도 청약했다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는 증권사 관계자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무책임한 기업과 무분별한 투자자가 만나면 증시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자금의 물꼬가 썩은 웅덩이로 새 나간다. 이같은 천민자본주의적 행태는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증시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우량기업의 성장을 통한 국가경제의 구조조정도 힘들어질 것이다. navido@hk.co.kr 김준형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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