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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선진제도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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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선진제도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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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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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영국케임브리지대교수·경제학 -한국을 잘 모르는 서양인들은 한국을 일본이나 중국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한국에서는 일본말을 쓰는가, 아니면 중국말을 쓰는가 하는 질문까지 받고 나면 불쾌한 생각이 들지만, 우리도 모든 서양인을 「미국사람」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피장파장이다.

요즈음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선진국형으로의 제도개혁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우리는 제도개혁 부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논의에서 「선진국형 제도」라고 불리는 것들이 대부분 미국식 제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모든 선진국들이 미국과 거의 유사한 제도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선진국들의 경제제도를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엄청난 다양성에 놀라게 된다.

우리가 「선진경제」라고 하면 연상하는 주주 지상주의(shareholder sovereignty), 자유방임주의, 그리고 「작은 정부」를 이상으로 삼는 미국 자본주의는 전체 선진국들을 기준으로 볼 때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물론 미국경제가 실제로 이러한 원리들을 충실히 따르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미국과 제도적으로 가장 유사한 영국 캐나다 마저도 미국보다 월등히 발달된 복지국가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비영미권(non-Anglo American) 선진국의 경우에는 그 차이가 더욱 심하다.

주지하는 사실이지만, 일본은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조 관계, 관련 기업간의 상호 주식보유, 종신고용제 등 미국과는 매우 다른 제도를 가지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독일도 주식시장보다는 은행 중심의 금융제도, 노사 공동결정원리(co-determination)에 따른 기업경영, 발전된 복지국가, 엄격한 기능공 제도 등을 바탕으로 미국식 자유방임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회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를 통하여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프랑스는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엘리트 관료의 주도에 의한 적극적인 산업 정책과 국가의 금융기관 통제를 통해 2차대전 이후 영국을 추월하고 (현재 1인당 소득이 영국보다 40% 가량 높음) 독일에 이은 유럽 제 2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구제국은 노사정 합의를 통해 투자, 임금, 사회복지 지출수준을 정하는 소위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corporatism)를 통해 세계 최고의 생활수준을 이루었다.

이탈리아는 북부의 밀라노와 토리노를 거점으로 한 대기업들(자동차회사 피아트가 그 대표적인 예)과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을 중심으로 한 중부에 포진한 다품종 소생산에 주력하는 고부가가치 중소기업들(의류업체 베네통이 그 예)의 상호 조화로, 2차대전 직후 농업인구가 50%를 차지하던 빈곤국의 위치를 벗어나 지금은 영국보다도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오스트리아는 북구제국과 유사한 사회적 조합주의로 이룬 거시 경제의 안정을 기초로 하고, 공기업 부문의 역동적인 투자를 통해 2차대전 직후 체코보다도 낮았던 생활수준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리고 현재 10%내외의 고실업에 시달리는 유럽에서 4%가량의 낮은 실업률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제도」란 흔히 생각하는 대로 미국식의 제도만이 아니며,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경제제도라는 것이 상품과 같이 단순히 외부에서 수입될 수 없고 그 나라의 경제적 여건, 정치구조, 사회적 관행, 그리고 문화적 전통 등과 「연계적으로 진화(co-evolution)」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진자본주의=미국 자본주의」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시야를 넓혀 미국을 넘어 여러 선진국의 제도들을 비교 연구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들을 잘 취사선택하여 제도개혁의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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