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선비. 후학들은 「한국사 신론」저자인 원로 국사학자 이기백(75)교수를 이렇게 부른다. 노학자는 지난해 한림대 한림과학원 객원교수를 끝으로 강단을 떠났지만 나이도 잊은채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그는 고 이병도(1896∼1989)박사의 수제자로 해방후 한국사학계 1세대다. 그는 47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강사(56∼66년)를 거쳐 이화여대(58∼63년) 서강대(63∼85년) 한림대(85∼98년)에서 교수로 40여년간 교단에 섰다.그의 역작 「한국사 신론」은 67년 「국사신론」으로 첫 선을 보인 이래 개정(76, 90년)을 거듭하면서 그릇된 식민사관을 철저히 비판하고 한국사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발전적으로 파악했다. 올해 순한글판으로도 나온 이 책은 영어판, 중국어판, 스페인어판 등으로 출간돼 국외에서도 성가를 얻고 있다.
그는 신라와 고려사 연구에 몰두, 이 분야에 「고려병제사 연구(68년)」「신라정치사회사 연구(74)」「신라사상사 연구(86)」「고려귀족사회의 형성(90)」등의 대표적 저작을 펴냈다. 그는 신라 권력구조가 왕과 상대등, 집사부 시중의 3각관계에 기반한다는 학설을 제시하며 신라를 귀족연합-전제왕권-귀족연립시대로 구분했다. 이 학설을 많은 후학들이 발전시켰다. 신라 의상대사 연구를 통해 화엄종이 전제왕권 구축의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 김두진(54·국민대)교수, 삼국사기 신라본기 연구로 신라 국가형성기와 골품제를 파헤친 이종욱(53·서강대)교수, 신라 혈족집단과 골품제, 화랑제도에 전념한 이기동(56·동국대)교수가 그들이다. 또 신라말 미륵사상 연구에 힘쓴 조인성(趙仁成·42·경희대)교수, 후백제를 세운 견훤을 연구한 신호철(49·충북대)교수, 신라 통일직후 전제왕권시대를 전공한 김수태(42·충남대)교수 등은 연구의 지평을 넓힌 이들이다.
이교수는 또 고려시대 병제가 병농일치에 입각한 당나라 부병제를 모방했다는 기존학설을 뒤엎고 전문적 군인이 핵심을 이루는 군반제였다는 새학설을 제시했다. 군반제설은 민현구(58·고려대) 홍승기(54·서강대) 김당택(49·전남대) 조인성(42·경희대)교수 등에 의해 계승됐고 이들은 「고려군제사」(육군본부) 발간을 통해 이 설을 확인했다. 고려초기 지배층은 문벌귀족이라는 이박사의 주장을 완성시킨 후학도 많이 나타났다. 김용선(49·한림대)교수는 묘지명(생전의 일대기를 새겨 관밑에 넣어 두는 돌)분석으로써 이를 뒷받침했다. 민현구교수는 이 주장을 발전시켜 고려후기 지배층은 권문세족이라는 학설을 제시했다.
이기백 자신은 후학들을 「학파」 「인맥」 등 세속적 인연으로 분류하기를 극히 싫어했다. 인맥만들기를 꺼려한 것이다. 그렇지만 따르는 후학들은 수없이 많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이정식(미펜실베이니아대) 이수건(64·영남대) 유영익(61·연세대) 이병휴(·61·경북대) 송방송(57·영남대) 에드워드 슐처(55·하와이대) 김두진(54·국민대) 이현혜(50·한림대) 주보돈(44·경북대)교수가 그들이다. 후학들은 『진리와 도덕을 조화시키고 실천하는 선생의 선비적 모습에 반해 많은 후학들이 따르게 됐다』고 말한다. 권대익기자 dkwon@k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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