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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대공습] "코소보는 생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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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대공습] "코소보는 생지옥"

입력
1999.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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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언제나 여자와 어린이, 노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6일째 이어지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대유고 공습도 마찬가지다. 나토군의 미사일이 터질 때마다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전쟁의 공포로 전율한다.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시민들은 나토의 공습 이후 더욱 잔인하게 진행되고 있는 세르비아군의 인종청소를 피해 집을 버리고 피난길을 떠나고 있다. 외신들이 전하는 공습이후의 현지 상황을 정리한다.알바니아계 50만명 피란길

나토의 공습이후 코소보의 주도 프리슈티나는 생지옥으로 변했고,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 200만명중 50만명이상이 피란길을 떠났다.

아녀자들이 대부분인 알바니아계 난민들은 나토의 공습개시 이후 유고군과 세르비아 민병대가 강제로 집을 떠나라고 명령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떠난다』는 내용의 문서에 사인한 뒤 입고 있던 옷만 겨우 걸친채 집을 빠져나왔다며 자신들이 떠나자 마을 전체가 불에 타버렸다고 울부짖었다.

프리슈티나에서 마케도니아로 피란온 한 의사는 공습이 시작된 뒤 프리슈티나에는 물과 전기 공급이 중단됐고, 폭발음과 총소리가 밤새 들렸다고 말했다. 그는 『3일밤을 다락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에게는 진정제를 먹여야할 정도였다』며 무장한 세르비아 민병대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수류탄을 던지고 불을 지르며 사람들을 죽였다고 증언했다.

코소보 서부의 한 마을에서 알바니아로 피란온 13세 소년 야쿠프 비티키는 『그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 코소보에는 알바니아계가 살 곳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난민들은 피란길에서 수많은 마을들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목격했으며, 한 난민은 민간인에 대한 처형과 강간, 무차별 폭행이 자행되는 가운데 14세 소녀가 부모가 보는 앞에서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나토측은 세르비아군이 코소보에서 벌이고 있는 초토화 작전은 다름아닌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라고 밝히고 있다. 영국 공군의 데이비드 월비 준장은 세르비아군이 코소보와 알바니아 접경지역 10마일이내의 마을 주민들을 모두 강제추방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지 로버트슨 영국 국방장관은 또 91~95년 보스니아내전때 민간인을 대량 학살해 악명이 높았던 유고 민병대 사령관이자 일명 「아르칸」으로 알려진 젤류코 라즈나토비치가 코소보에서 목격됐다고 밝혔다.

알바니아 정부는 특히 나토군의 공세가 더 강화될 경우 세르비아군이 유고 연방 몬테네그로로 강제 이주시킨 코소보 난민들을 「인간방패」로 이용할 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정태기자

공습6일째 베오그라드

텅빈 거리. 활기가 넘쳐야할 주말의 베오그라드 거리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시민들은 어둠과 함께 시작되는 나토군의 폭격으로 밤과 낮이 바뀌었다. 공습사이렌이 울리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지하대피소로 몸을 피하지만 멀리서 들리는 폭발음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26일밤에는 베오그라드 인근의 화학공장이 폭발해 대피소 안으로 매케한 연기가 스며들었다. 아침이 되자 겨우 몇몇이 잠을 청했을 뿐,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없이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와 연이은 폭격, 갑작스런 대피소 생활로 인한 충격으로 잠을 못이룬채 대피소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27일에는 해가 저물지 않은 오후 4시 45분부터 베오그라드 인근에 폭격이 시작됐고, 저녁 7시부터는 아예 전기가 끊겼다. 밤새 시내 전체가 칠흙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지하대피소에서 32번째 생일을 맞은 비랴냐는 대피소의 차디찬 콘크리트바닥에서 눈을 붙이고 있는 5살 짜리 딸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의 남편은 『미국인들이 내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는 불꽃놀이를 벌이는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나 이들은 또다시 날이 어두워지면 지하대피소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 이들을 더욱 무섭게 만드는 것은 이런 날이 얼마나 계속될 지 모른다는 것. 갈수록 생활이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리터에 7디나르였던 가솔린 가격이 공습 개시후 1주일만에 55디나르로 8배나 올랐고, 커피와 같은 수입식품값도 급등했다.

바깥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것도 답답하기만 하다. TV에서는 폭격으로 불타는 공장과 그리스, 러시아 등지의 반미시위 화면만을 되풀이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전쟁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밀로셰비치입니까, 코소보의 알바니아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미국인들입니까』 일요일인 28일 수천명의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공습에 반대하는 야외콘서트를 가졌다.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이제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박정태기자 jt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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