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전 대기실 『자 소주 한 잔 받으시고 옛날 이야기 해보세요』 『캬! 남편은 바람 피우제, 물(먹을) 건 없제, 시어마시(시어머니)는 독하제…』 24일 오후 2시 SBS의 「좋은 세상만들기」 4월 3일 방영분 취재차 찾은 서울 강서구 등촌동 공개홀 대기실. 잘못 왔나 싶어 가려는데 이상훈PD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녹화 전 웬 술판이냐는 의구심은 이내 풀렸다.#음주녹화전략 이날 출연할 김복달(89)할머니를 비롯한 경남 함양군 안의면 동촌마을 사람들. 대부분 난생 처음 서울에 올라왔다. 이날 아침 6시 관광버스로 출발, 오후 1시 20분에 도착한 노인들은 휘황한 조명과 갖가지 방송시설에 기가 질린 듯 말을 잇지 못했다. 98년 3월 첫 방송을 한 후 노인들에게 애먹었던 이PD가 묘안을 냈다. 바로 「음주녹화전략」. 좀체 말을 않던 시골 노인들이 술 한 잔 들어가자 청산유수. 이제 오히려 이PD가 술 좀 그만 드시라고 애걸한다.
#섭외에서 출연까지 출연마을 섭외에서부터 사전답사, 「고향에서 온 편지」 「고향 CF」 코너 야외촬영, 스튜디오 녹화까지 2~3개월이 걸린다. 처음에는 방송사가 출연을 섭외했지만 시청률이 30%대를 넘는 인기 프로가 되자 요즘에는 거꾸로 신청을 받는다. 150개 마을이 출연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
#녹화 직전 오후 4시 25분 녹화시작 5분전. 진행자 서세원이 대기실을 찾았다. 『서세원 이고만』 『악수 한번 하제』 출연자인 6명의 노인들이 우르르 몰렸다. 서세원이 녹화시간이 됐는데도 공동진행자인 신은경이 보이지 않자 『어디 있어? 뭣하는 거야?』며 소리를 지른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 미안하다며 분장실에서 뛰어 나온 신은경을 보고 할머니들이 달려가 『참 예쁘제』 『아이구 신은경이고만』 얼싸 안는다.
#방청석 풍경 서세원의 오프닝 멘트가 나오고 동원된 방청객들이 박수를 친다. 하지만 다른 프로에서 볼 수 없는 방청석 풍경이 있다. 출연자를 응원하러 함께 올라 온 동촌마을 주민 30여명과 서울의 가족 30여명이 공개홀에서 즉석 잔치판을 벌인 것. 방청석에서는 『신은경이 생각보다 키 작고만』 『서세원 이빨이 정말 나왔제』 수군거림이 이어진다.
방청객들은 공개홀 무대에 설치된 멀티큐브를 통해 장희빈을 극화, 함양사과를 선전한 「내고향 CF」를 보면서 자신들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나다. 나』 탄성을 지른다.
#NG도 괜찮다 프로의 하이라이트 「장수퀴즈」코너. 이성재(70)·허경선(73)부부를 비롯한 6명의 출연자가 무대로 올라오고 마을에서 가져 온 멧돼지 고로쇠 등 특산물 자랑이 이어진다. 김복달할머니가 서세원에게 상추 싼 멧돼지 고기를 고추와 함께 입에 넣어줬다. 얼마나 매웠던지 서세원이 『물! 물!』. NG지만 중단않고 녹화가 계속된다. 『만약 흐름을 끊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말을 못하고 분위기가 썰렁해져 NG가 나도 그대로 간다』는 이PD의 설명.
#장수퀴즈 퀴즈가 시작됐다. 『결혼 하기 전에 아기 낳은 여자를 뭐라고 부르지요?』 이PD가 부저를 누르고 답을 말하라고 수십번 주의시켰건만 소용이 없다. 막무가내로 『미친 년』 『정신 나간 년』 대답이 이어진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매번 이런 식이다. 드디어 이씨 부부가 우승하고 시작한 지 1시간 30분만에 녹화가 끝났다. 동촌마을의 나이 든 어른들이 신은경에게 몰려가 사인을 받느라 부산하다. 그리고 기념사진 촬영까지 요구하고 나선다. 오빠부대가 따로 없다. 『노인프로 진행하면서 하도 많이 웃어 생활도 즐겁고 성격도 밝아졌어요』라는 신은경.
#녹화 후 출연자들은 각자 2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 오후 6시 시골로 내려가기 위해 공개홀 앞 관광버스로 이동했다. 그러나 출연자와 방청객 대부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여한이 업그러. 내가 살아서 다시 언제 서울을 올수 있것나. 고맙데이 고맙데이…』 김복달 할머니가 작가 이미자씨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작가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는 순간. 관광버스는 어스름해진 등촌동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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