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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움직인 책] 2.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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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움직인 책] 2.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

입력
1999.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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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의 책은 「자본론」, 「꿈의 해석」과는 다른 독특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는 책을 내면서 닥쳐올 거대한 세계관의 변화를 예감했다. 소쉬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나온 「일반언어학강의」는 50년 후에 언어학은 물론 구조주의와 기호학을 생겨나게 한 씨앗이다』 고려대 김성도(언어학)교수.소쉬르는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살아 있을 동안 극히 전문적인 언어학 논문을 제외하고는 저술을 발표하지 않았다. 박사 논문을 출판한 것을 빼면 책도 한 권 없다. 죽기 얼마 전인 1907∼1911년 제네바 대학의 세 차례 강의를 묶은 「일반언어학강의」(이하 일강) 역시 그의 집필이 아니다. 사후에 수강생 8명의 노트를 짜집기해서 제자들이 펴낸 책이다.

소쉬르의 「일강」에는 지금도 언어학은 물론 다른 학문에서 중요하게 인용하는 개념들이 등장한다. 첫째는 「랑그(langue)」와 「파롤(parole)」. 랑그는 언어공동체가 공동으로 수용하고 있는 기호의 체계를 말하며 파롤은 랑그를 사용하는 개인적인 언어행위를 뜻한다. 또 다른, 더 중요한 개념은 「시니피앙(signifiant·청각영상)」과 「시니피에(signifie·개념)」. 소쉬르는 언어를 화자(話者)의 정신 속에서 일어나는 청각영상과 개념의 결합으로 보았다.

소쉬르는 이렇게 양분한 개념을 가지고 언어의 원리를 설명해 들어간다. 기호는 자의적(사회적인 계약)이어서 언어 기호의 토대는 그것들이 지칭하는 외부 현실과 독립해 내적 질서로 해명할 수 있다.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기호를 변형시킬 수도 없고, 같은 이유에서 기호는 화자의 의지를 벗어나는 법칙에 따라 변한다. 소쉬르는 시간적인 연속성을 가지는 언어의 진화(통시태)와 일정시기의 언어체계(공시태·共時態)에 대한 분석을 병행해야 한다는 새로운 방법론도 제기했다.

이같은 생각은 20세기 언어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들로 자리잡았다. 롤랑 바르트의 문화 기호학,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 레비스트로스의 문화 인류학 등 구조조의자와 기호학자들의 연구에도 소쉬르의 개념이 단골로 등장한다. 소쉬르는 생전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남긴 연구 노트에서도 이런 내용을 밝힌 적이 없었다. 죽기 몇 해 전에 그려본 언어 연구의 체계들이 새로운 사상과 철학으로 일파만파 번진 셈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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