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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장관님들, 공부 좀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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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장관님들, 공부 좀 하시지요

입력
1999.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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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DJ가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해서 준비된 장관을 선별하여 멋진 내각을 꾸릴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준비안된 인물들만 골라 쓰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저급 테크노크라트가 결합하면 남미식의 민중주의, 또는 독단적 위임민주주의가 태어난다. 그것은 자나깨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통치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항목이다. 대통령이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장 옳은 것일 수 없고, 대통령이 힘주어 말한다고 반드시 그 방향으로 관철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장관들은 때로 반박하고 읍소하고 연구해서 지도자의 정책기조가 현실 적합성과 효율성을 갖추도록 보좌해야 한다. 테크노크라트의 수동적 역할을 뛰어넘는 풍부한 정책식견과 정치역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작금의 일로 판단하건대, 현정부는 돌진형, 방관형, 땜질형, 무지형 장관들로 채워져 있다.

내친 김에 다 쏟아놓자. 교육부와 해양수산부 장관은 앞뒤 안가리는 저돌성에 있어 서로 닮았다. 교육부장관은 그 어려운 교원정책의 벽을 돌파했다는 공적은 있으나 대학정책은 엉망이다. 대학이 이념적 다양성을 지키는 최후의 도량이라는 점은 자신이 더 잘 알면서 백지상태의 신입생들에게 과거를 청산한다는 감동적 서한을 보낸 일이나, 이제는 유럽과 미국에서 혁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연구중심 대학모형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논쟁거리가 아닐 수 없다. 비판적 필봉을 휘둘렀던 분이 언제, 왜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로 과감하게 변신하였는지 알고 싶다. 해양수산부장관의 저돌성은 세간의 웃음거리다. 앞으로 이 부처의 장관을 발탁할 때는 이런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못박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면, 마라도 근해에서 주로 잡히는 어종은 무엇인가, 부산과 목포에는 쌍끌이 어선이 각각 몇 척 있으며, 한 척당 연간 어획량은 얼마나 되는가, 등등. 경제장관들은 방관형이 대부분이다. 몇 사람이 동분서주해도 빅딜의 장애물을 넘지 못한다. 이제 애물단지로 변한 자동차산업의 빅딜이 과연 국민경제와 지역경제에 어느 정도 충격을 가할지를 대충 짐작했을 터인데도 누구하나 총대를 메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공기업매각도 전기, 통신, 가스, 철강과 같은 인프라산업만은 안된다고 버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노동부장관은 땜질형의 전형이다. 지금까지 수십 종류의 크고 작은 실업정책에 11조원을 시시각각 투입하고도 실업률은 증가일로에 있다. 올해 16조원을 투입한들 여기저기 새는 구멍을 막을 수 있을까? 도대체 한국에서 실업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책임자는 누구인가?

보건복지부장관의 무지는 이 정권의 절정이다. 교수출신 장관보고 무지하다해서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보건전문가에게 사회보장정책을 맡겨놓는 집권자도 문제다. 국민연금은 노후안정을 위한 공공자산이며 경제발전에 투입되는 국민적 자본형성의 핵심 기제이다. 그래서, 국민연금은 사회적 권리의 꽃이자 유럽정치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이 된다. 연금을 둘러싼 쟁점을 해결하는 정당은 집권에 성공한다. 98년 독일의 기민당은 연금삭감과 조세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사민당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정책사안이, 다시 말해, 정부가 모든 실정(失政)을 단번에 만회할 수 있는 호재(好材)가 한국에서는 원망의 대상으로 변했다. 「연금확대는 곧 일자리 창출」이라는 평범한 공식조차 신지식으로 무장한 각료들이 몰랐다는 것은, 또는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저급의 테크노크라트에게나 어울리는 모습이다.

요컨대, 시민들은 대통령의 정책관을 때로 반박하고 수정하는 식견있는 장관을 원한다. 이 어려운 시대에 「받아적는 장관」은 필요치 않다. 그러니, 제발, 장관님들, 공부 좀 하시지요.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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