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공공조직의 새 틀을 짜기 위한 정부조직개편작업이 부처간 통폐합등 「하드웨어」는 거의 손대지 못한 채 사실상 막을 내렸다.정부 스스로 조직 자체 보다는 정부운영방식, 즉 「소프트웨어」개혁에 초점을 맞췄다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 철도·우정업무 민영화, 조달·특허청등의 책임운영기관화, 교육·치안업무의 지방이양등에서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논리와 부처이기주의에 휘말려 조직에 관한 한 현상유지에 급급함으로써 「286급 동체에 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난센스를 연출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영진단을 맡았던 민간컨설팅팀이나 조정위원회는 산업자원+과학기술+정보통신, 노동+보건복지, 비상기획위원회+행자부민방위본부, 해양수산부폐지등 파격적 개편방향을 건의한 바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상근 정부조직중 없어진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국정공보처가 1년만에 되살아 난데다 중소기업특위마저 막판에 살아나는등 「작은 정부」이념마저 퇴색하게 됐다.
정부관계자는 『민간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참조사항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민간쪽에선 『경영진단결과를 이렇게 무시할 바에야 뭣하러 46억원의 국민세금만 쏟아부었는가』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현상유지 결정이 합리적 토론이나 대안모색이라기 보다는 사활을 건 부처이기주의와 공동정권내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민간팀들이 폐지를 건의했던 해수부가 존속된 데에는 부산지역 민심이 고려됐으며 과기부등 다른 통·폐합에도 국민회의와 자민련간 「장관자리수 배분」문제가 대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조직개편은 예산권(기획예산처)과 정책조정권(재정경제부)을 분리함으로써, 주요 경제현안조율에 심각한 난맥상을 연출할 가능성마저 잉태하고 있다.
기획예산위가 공무원사회의 경쟁도입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해온 개방형 임용제 역시 「결원을 메꾸는」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 현재로선 「소프트웨어」개혁의 성과도 불투명해 보인다. 정부조직개편이 작업개시 다섯달만에 원점으로 U턴함에 따라 정부는 민간에 추가적 고통분담과 구조조정을 요구하는데 스스로 부담을 자초하게 된 셈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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