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스위스 샤토 되를 출발한 열기구 「브라이틀링 오비터3호」가 20일(현지시간) 서아프리카 모리타니 공화국의 서경 9.27지점을 통과, 최초의 무착륙 세계일주기록을 달성하는 순간 제네바 지상통제센터는 일제히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같은시각 약 1만㎙상공 열기구에서 무선통신으로 소식을 확인한 스위스 정신과 의사 베르트랑 피카르(41)와 영국인 브라이언 존스(51)는 서로부둥켜 안은 채 『성공으로 인도한 보이지 않는 손에 감사드린다』며 감격했다.샤토 되를 출발한 지 꼭 19일 1시간49분만에 4만2,810㎞를 날아 달성한 대기록이었다. 열기구 세계일주는 리카르 자신이 도전한 2번을 포함, 최근 20년동안 17번씩이나 시도됐지만 번번이 난기류와 연료부족 등으로 인해 실패했다. 지난해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졌던 영국 부호 리처드 브랜슨 팀도 태평양에 떨어지면서 좌절했다.
피카르팀은 태평양 상공에서 가스가 누출되고 서인도제도에서 회오리기류에 휘말리는 등의 어려움도 겪어야 했지만 매일 6시간씩 번갈아 운전하며 고비를 넘겼다. 특히 정신과 의사인 피카르는 기압차를 견디기 위해 최면술로 잠을 청했다. 또 온수기와 화장실 등을 갖춘 첨단장비인 20층 높이의 오비터3호 캡슐안에서 건조식품 등으로 연명했다. 그러나 세계각지에서 무선 인터넷으로 보낸 편지가 정신적 공황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번 도전에 수백만 달러가 소요되는 열기구 세계일주는 지금까지 부자들의 호사거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피카르는 달랐다. 그의 모험정신은 바로 집안 내력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인 할아버지 오귀스트는 1931년 열기구로 15㎞ 상공까지 도달, 최초의 성층권 비행에 성공했고 피카르의 아버지 자크 피카르(76)는 60년 심해(深海) 최저 잠수기록을 세운 장본인. 피카르는 이번 도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험심뿐 아니라 경험도 그대로 따라 했다. 오비터3호가 높은 고도에서 팽창할 여지를 갖기 위해 출발때 느슨하게 가스를 주입한 것은 할아버지의 방법이었고 제트기류로 빠른 속력을 낸 것은 아버지가 심해저에서 해류를 이용한 점에서 배웠다.
대기록이 달성되자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 등은 축하전문을 보내 격려했다. 피카르팀은 미 맥주회사 버드와이저사가 21세기 전까지 세계일주에 성공하는 팀에 내놓은 상금 100만달러의 절반을 자선단체와 함께 나누어 갖기로 했다.
피카르팀은 기록달성에 성공한 직후 안전하게 착륙할 수도 있었지만 250㎞의 최고시속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 알제리와 리비아 상공의 제트기류를 탄 뒤 이집트 카이로 인근에 21일 무사히 도착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