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졸업식을 위해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해주신 흰 포플린 치마를 잘라 옷을 만들어주던 사람, 단칸셋방에서 삯바느질로 학비를 마련해주며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힘을 주던 여인이 바로 제 아내입니다』원로 국어학자인 이응백(李應百·76)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결혼 50주년을 맞아 고인이 된 아내를 그리는 추모문집을 펴냈다. 「영원한 꽃의 향기-난향 죽정」이라는 이름의 문집에는 노학자의 가슴속에 남겨진 절절한 사부곡(思婦曲)들이 실려있어 읽는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교수가 93년 지병인 간질환으로 사망한 부인 민영원(閔瑛媛)씨와 결혼한 것은 49년 4월30일. 한달후면 「영혼 금혼식」을 맞는다.
당시 서울대 졸업반이던 이교수는 초등학교 교사인 20세의 부인을 중매로 만났다. 창경궁 경춘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했지만 어려운 살림탓에 학비는 물론 끼니까지 걱정해야 했다. 그러나 서예와 문학을 좋아하는 부인과 부부문집을 같이 만들 정도로 정은 두터웠다.
『당시 서울대 졸업식에는 감색바지와 흰색 반소매를 입어야 참석할 수 있었어요. 바지는 빌렸지만 윗도리를 마련못해 고민했는데 아내가 찢어낸 치마를 수선해줘 간신히 졸업식에 참석했어요』 이교수가 그리워하는 아내는 이밖에도 많은 모습으로 문집에 투영돼 있다. 모아온 털실로 남편의 조끼를 짜주던 정성, 아픈 몸을 이끌고 남편 고희잔치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모습, 해외여행을 약속하고 먼저 눈을 감았을 때의 아픔….
이상연기자 kubr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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